
- 고영민(1968~ )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앵두라는 단어는 앵두를 닮았다. 빨갛고 탱탱하고 동글동글한 앵두. ‘빨간 화이바’ 도 앵두를 닮아 생생하고 탱탱하다.
‘빨간 화이바’를 쓰고 그녀가 오니 앵두가 오는 것이고 싱싱한 그녀의 생명이 오는 것이다. 부릉거리는 스쿠터 소리조차
조르는 듯 투정을 부리는 듯 넘치는 애교로 그녀를 바라보는 이의 몸에도 충만감을 불어 넣어준다. 가랑이를 오므리고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운 섹시한 그녀. 인간이 만든 파이버, 인간이 만든 백미러, 이것들이 앵두나
기린의 귀를 닮아 자연의 모습을 흉내 내며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면 괜히 행복해진다. 오늘은 행복
한 날이 될 것이다. 풀 많은 내 마당으로 쒱 달려온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도 될 것이다.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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