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도현 (1961 ~ )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그러나 우리가 잊고 살거나 지키기 어려운 일상이 있다. 깊어가는 가을, 시인은 오전엔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다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오후엔 마루에 앉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쓰는 것으로 지난 계절을 세심하게 정리하는 한편 일에 밝은
이웃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한다. 저물녘에는 추녀 끝으로 줄지어 사라지는 기러기를 하릴없이 세기도 한다. 그리고 그리움이
사무치는 저녁, 불빛을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박한 일과. 그런데 마지막 행에서 “이것 말고 무
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라고 묻는 시인의 질문에 한동안 말문이 막힌다. 세속에 대한 욕망과 외로움을 누르는 담담한 일상을 택하
기가, 그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생각한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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