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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타고 담았다/단 한 컷을 담다

[스크랩] 자전거 여행 김훈

by 하기 2 2009. 6. 20.

살아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해도,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자전거 여행 - 김훈-

 

 

 

 

 

-김훈<자전거 여행> 중 머리말

 

 살아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의 힘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자전거여행>

 프롤로그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生死)가 명멸(明滅)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외롭고 새롭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純潔)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祝福)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구르는 바퀴 안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驅動軸)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 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氣盡)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오르막을 오를 때 기어를 낮추면 다리에 걸리는 힘은 잘게 쪼개져서 분산된다. 자전거는 힘을 집중시켜서 힘든 고개를 넘어가지 않고, 힘을 쪼개가면서 힘든 고개를 넘어간다.

집중된 힘을 폭발시켜 가면서 고개를 넘지 못하고 분산된 힘을 겨우겨우 잇대어가면서 고개를 넘는다. 1단 기어는 고개의 가파름을 잘게 부수어 사람의 몸 속으로 밀어넣고,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의 몸이 그 쪼개진 힘들을 일련의 흐름으로 연결해서 길 위로 흘려 보낸다. 1단 기어의 힘은 어린애 팔목처럼 부드럽고 연약해서 바퀴를 굴리는 다리는 헛발질하는 것처럼 안쓰럽고, 동력은 풍문처럼 아득히 멀어져서 목마른 바퀴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데, 가장 완강한 가파름을 가장 연약한 힘으로 쓰다듬어가며 자전거는 굽이굽이 산맥 속을 돌아서 마루턱에 닿는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러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작가 소개
저자  김훈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정외과 입학 및 중퇴,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등으로 일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가 있다. 이 책은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다.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자신의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문학기행』,『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예스24 제공] 
 
목차 
자전거 여행 1

프롤로그

1. 꽃피는 해안선 -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
2. 흙의 노래를 들어라 - 남해안 경작지
3. 지옥 속의 낙원 - 식영정.소쇄원.면앙정
4. 망월동의 봄 - 광주
5. 만경강에서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6. 도요새에 바친다 - 만경강 하구 갯벌
7.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 안면도
8. 다시 숲에 대하여 - 전라남도 구례
9. 찻잔 속의 낙원 - 화계면 쌍계사
10. 숲은 죽지 않는다 - 강원도 고성
11.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 여수의 무덤들
12. 그리운 것들 쪽으로 - 선암사
13.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14.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 경주 감포
15. 복된 마을의 매맞는 소 - 소백산 의풍 마을
16. 고해 속의 무한강산 - 부석사
17.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 - 영일만
18. 원형의 섬 - 진도 소포리
19.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진도대교
20. 길들의 표정 - 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21. 산간마을 사람들 - 도마령 조동 마을
22.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 - 하늘재, 지름재, 조소령, 문경새재
23. 가마 속의 고요한 봄 - 관음리에서
24.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 양양 선림원지
25.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 태백산맥 미천골
26. 노령산맥 속의 IMF - 섬진강 상류 여우치 마을
27. 시간과 강물 - 섬진강 덕치 마을
28. 꽃피는 아이들 - 마암분교
29. 한강, 흐르지 않는 세월 - 암사동에서 몽촌까지
30. 강물이 살려낸 밤섬 -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31. 조강에 이르러 한강은 자유가 된다 -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에필로그 - 자전거 타는 김훈에게 / 김기택

 

자전거 여행 2

프롤로그

1.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 - 조강에서
2. 빛의 무한공간 - 김포평야
3. 고기 잡는 포구의 오래된 삶 - 김포 전류리 포구
4. 10만 년 된 수평과 30년 된 수직 사이에서 - 고양 일산 신도시
5. 산하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다 - 중부전선에서
6. 전쟁기념비의 들판을 건너가는 경의선 도로 - 파주에서
7.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는 자전거 - 남양만 갯벌
8. 멸절의 시공을 향해 흐르는 '갇힌 물' - 남양만 장덕 수로
9. 시원의 힘, 노동의 합창 - 선재도 갯벌
10. 시간이 기르는 밭 - 아직도 남아 있는 서해안 염전
11.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경기만 등대를 찾아
12.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 광릉 숲에서
13. 나이테와 자전거 - 광릉수목원 산림박물관
14. 여름 연못의 수련, 이 어인 일인가! - 광릉 숲 속 연못에서
15.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람들의 오래된 꿈 - 가평 산골마을
16.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 - 남한산성 기행
17. 고귀한 것은 마땅히 강력하다 - 여주 고달사 옛터
18. 전환의 시간 속을 흐르는 강 - 양수리에서 다산과 천주교의 어른들을 생각하다
19. 얼굴, 그 안과 밖에 대한 명상 - 광주 얼굴박물관
20. 권력화되지 않은 유통의 풍경 - 모란시장
21. 마음속의 왕도가 땅 위의 성곽으로 - 수원 화상
22.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 미륵의 손 - 안성 돌미륵

 

 

자전거 여행 

 

김훈

 

책 소개
그동안 여러 권의 산문집을 통해 세상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생의 긍정과 짝을 이루는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합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바 있는 저자 김훈이 5년만에 펴내는 여행 산문집이다.

 

이 책은 자전거로 쓴 기행문이다. 저자는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봄까지 '풍륜'(바람바퀴)이라 이름한 자신의 자전거 하나에 의지하여 태백산맥, 소백산맥 그리고 반도 끝 구석구석을 순례하였으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산골마을에서 바닷가의 남루한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퇴계나 충무공 같은 위인들에서부터 이름없는 오지의 촌로들과 분교의 아이들까지, 자신의 두 바퀴에 담아온 이 땅의 풍경들을 이 책속에 핍진한 언어로 되살려내고 있다.

자전거가 보는 길, 자전거가 밟는 길은 그 자체로 인간의 흔적이 된다. 저자 특유의 미문과 범접할 수 없는 시선의 깊이는 바로 땀을 통해 일상 깊숙이 감춰져 있던 진리를 길어올린 데서 획득된 것이다. 이때 자전거는 저자의 분신이자 행간마다 숨어 있는 성찰의 매개자로 작용한다.

페달을 돌리는 저자의 땀오른 근육을 통해 자전거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얘기하고, 나아가 모든 인간들의 삶의 굴곡들에 대한 힘찬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 책에서 자전거는 단순히 기계나 교통수단의 위치를 훌쩍 뛰어넘어 저자와 한 몸이 되고, 저자는 자전거를 통해 세상과의 통정을 꿈꾼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점점 퇴보하는 인간의 육체기능을 되살리는 한편, 새천년 새로운 미답의 영역을 열어보이고 있다.

 

 

[추천글]
자전거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오고 있다. 자전거 위에 물음표처럼 몸을 숙인 원색의 헬멧과 사이클복의 조화는 이국적이었다. "저 모던 보이 좀 봐!" 그가 바로 '청년 김훈'이었다.

자동차와 문명이 통제된 길들을 저렇게 날렵한 물음의 자세로 탐문하며, 굴리면서 굴러가고, 싣고 가면서 실려 갔었구나. 자전거와 한몸 되어 다만 밀고 나갔었구나. 밀고 나가는 순간 길의 몸이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렸었구나.

'밥벌이'의 가파름에서부터 '문장'을 향한 열망까지를 넘나드는 '처사(處士) 김훈'의 언(言)과 변(辯)은 차라리 강(講)이고 계(誡)이다. 산하 굽이굽이에 틀어앉은 만물을 몸 안쪽으로 끌어 당겨 설(說)과 학(學)으로 세우곤 하는 그의 사유와 언어는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

학과 종교학을 종(縱)하고 횡(橫)한다. 가히 엄결하고 섬세한 인문주의의 정수라 할 만하다.  

진정 높은 것들은 높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마련인가 보다.    - 정끝별(시인,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책 머리에

벗들아,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지 말아다오.

나는 마침내 내 자신의 생명만으로 자족할 수 없고, 생명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부자유만이 나의 과학이고 현실이다. 나는 나의 부자유로써 나의 생명을 증거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가을의 마지막 빛 속에서 풍륜은 태백산맥을 넘었다.

눈 덮인 소백, 노령, 차령산맥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풍륜은 봄의 남쪽 해안선에 당도하였다. 거기에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울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 52살의 여름에 김훈은 겨우 쓰다 - 김훈

 

▲ 제 잔차의 이름은 ' 바람의 자유'입니다 ⓒ 2009 한국의산천


[미디어 리뷰]

경향신문 

 문장가 김훈씨(시사저널 편집국장)가 기어가 달린 그의 자전거 ‘풍륜(風輪·바람바퀴)’을 타고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며 글로 쓴 ‘진경산수화’. 천적들의 먹이사슬을 지옥도의 죽음이 아니라 장엄한 만다라의 ‘보시’로 그려내는가 하면 지식인들의 원한과 치욕보다는 장삼이사의 밥과 사랑을 우선시한다. 만물의 높낮이를 사양하는 그의 원근법은 만물의 이글거리는 식욕과 관능을 인정하는 태도의 소산으로 보여진다.

조국의 삶과 자연들은 저자에게 누드와 비의(秘義)를 보여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죄다 껍데기를 벗는다.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그의 고통스런 글쓰기 덕분이다.

그가 ‘날똥 같은 세상’에 대해 욕을 할 때도 그 문장이 아름다워서 욕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고 말하지만 글 속에 무릉도원을 몇 단지 건설한다.

실용적인 여행기로 읽자면 이토록 ‘정보’가 드문 추상적인 답사기는 일찍이 없었다.

이 나라의 언어로 이 나라의 풍경과 삶의 진경(眞景)을 본때있게 그려낸 순례기인 것이다.

 - 김중식 기자 ( 2000-08-10 )


국민일보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김훈(52)이 최근 자전거 하나로 국토를 순례한 후,이 땅의 풍경과 상처어린 삶의 흔적을 담은 산문집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을 펴냈다.

그는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눈 밝은 독자들에겐 하나의 전설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다.

그는 이미 여러 권의 산문집을 통해 긴장과 열정을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모국어가 도달할 수있는 산문미학의 한 경지를 보여준 바 있다.5년만에 펴내는 산문집 ‘자전거 여행’에서도 김훈 특유의 미문과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자전거로 쓴 기행문이다.저자는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봄까지 ‘풍륜’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 태백산맥 소백산맥을 비롯,국토의 구석구석을 순례했다.

꽃피는 해안선(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거쳐 지옥속의 낙원(소쇄원 식영정)을 지나 광주 망월동을 찾았다.퇴계나 충무공같은 위인들에서부터 이름없는 오지의 촌로들과 분교의 아이들까지, 자신의 두 바퀴에 담아온 이 땅의 풍경을 연필로 꾹꾹 눌러 원고지에 적었다.

자전거가 보는 길,자전거가 밟는 길은 그 자체로 인간의 흔적이 된다.페달을 돌리는 저자의 땀 오른 근육을 통해 자전거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얘기하고,나아가 인간의 삶의 굴곡에 대해 힘찬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살아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기진한 삶속에도 신비는 있다.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 마디에서,기어의 톱니에서,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해도,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한승주 기자 ( 2000-08-07 )

 


대한매일신문

 ‘문학 저널리스트’라는 지은이의 별칭에 어울리게 산야를 자전거로 돌며 훑은 풍경화같은 산문 31편이 실렸다.지은이가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풍륜’(자전거에 붙인 이름)을 타고 후미진 산골과 바닷가 마을까지 두루 돌아다닌 끝에 길어올린 기행문들.

서정어린 지은이의 시선은 경주 감포를 ‘무기의 땅,악기의 바다’로,영일만을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로 보았는가 하면,마암분교에서는 ‘꽃피는 아이들’을 봤다.미문이되 힘이 느껴지는 필치가 어느 산자락,바닷가 한 귀퉁이를 돌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낸다. ( 2000-08-08 )


 

문화일보

 최근 출간된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인 김훈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 타고 둘러본 산천방랑기다. 그는 `풍륜(風輪)'이라고 이름붙인 자전거에 몸을 실어 남녘 바닷가에서 백두대간의 높은 고개까지 흘러다녔다. 1999년 10월부터 시작한 자전거 여행은 올 6월에 끝났다.

한번 떠나면 약 200㎞를 달리는 장정에 시달려 자전거는 다 망가졌지만, 대신 아름다운 에세이집 한 권을 남겼다.

책은 저자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자동차조차 올라가기 어려운 이름없는 고갯길을 넘어가며 그는 이 삶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스쳐가는 풍경을 말하려는 나의 문장"이라고 말한다. `치명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는 이런 저자의 `문학주의적 태도'는 `풍경과 말'이라는 두 가지 화두에 붙잡힌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그는 `왜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대신, 자전거 여행으로 만나는 많은 풍경을 말해야하는 자신의 문장에 집중한다. 또 그 싸움은 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이라 하더라도 자연에 맞설 수 없다는 점을 그는 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풍경보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되었다. 그는 굳이 짜내듯 한문장 한문장 말을 다듬어내 여행에서 마주친 풍경과의 미학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훈의 문장은 전체가 아니라 한구절한구절 읽어야 제 맛이 난다. 한 문장으로도 전체를 다 품어 내는 정교한 미학적 장치가 김훈문장의 자랑거리다. "아름다운 한국어의 밭"이란 세간의 평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문장은 이번 책에서도 여전하다.

전남 선암사화장실에서 똥누는 행복을 말하며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고 노래하고, 전북 옥구 염전에서 "소금은 `소식'처럼 이 염전에 내려온다.

바람이 멎어서 물이 흔들리지 않고 햇볕이 가팔라서 물이 내려앉아야 좋은 소금이 온다.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알 속에서 고요히 머물고 있기에"라고 노래한다.

충북 영동의 외딴 고갯길, 도마령 옛길에서 그는 마음을 찾아가는 자전거의 길을 말한다.

"도마령 옛길은 산의 기세가 숨을 죽이는 자리들만을 신통히도 골라내어 굽이굽이 산을 넘어갔다.

그 길은 느리고도 질겼다…. 그리고 그 길은 산속에 점점이 박힌 산간마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서 가는 어진 길이었다. 어떤 마을도 건너뛰거나 질러가지 않았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길은 본래 저러한 표정으로 굽이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여행에 동행한 사진 또한 글과 한판 경합을 벌이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본문'이다.

황헌만, 이강빈씨가 풍경과 자전거 여행자의 고투를 한 화면에 다 잡아냈다.

 

- 배문성 기자 ( 2000-08-02 )

 


 

세계일보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저널리스트이자 탁월한 에세이스트요, 소설가로도 활약해온 김훈(52)씨의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이 출간됐다. 자전거로 국토 곳곳을 누비며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자연과 인간을 포착한 글들이 사진작가 이강빈씨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수록된 책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올 봄까지 '풍륜'(風輪)이라고 명명한 자신의 자건거를 타고 태백산맥에서부터 땅끝 바닷가의 남루한 마을까지 길고 긴 길들을 오르내린 감상들이 적혀 있다.

'풍륜'이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 바퀴'일 터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바람의 나이'이기도 하다. 고정된 장소에서 늙어가는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가 연륜이라면, 풍륜은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유한한 세상의 무한한 풍경들을 관찰하며 늙어가는 시적인 '나이'일 것이다.

지은이가 그 '바람 바퀴'를 굴려 돌아다닌 궤적은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에서 옥구 염전과 도요새들이 노니는 만경강 하구의 갯벌, 안면도와 쌍계사와 소백산 산골의 의풍마을까지 구석구석 이어진다.

 

- 조용호 기자 ( 2000-08-09 )

 

 

조선일보

 살아가며 한순간 우리 눈에 빛나는 것이 있습니다.

가을 아침, 풀밭길의 이슬이 그렇지요. 그때 햇빛과 눈맞춤을 해보셨는지요.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눈맞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 이슬밭을 파고드는 햇빛과 풀끝에서 눈맞춤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풀밭에 들어가 바짓가랑이를 흠뻑 적셔본 적은 없는지요.

햇빛 아래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자전거의 은빛 바퀴를 바라볼 때의 모습 역시 그러합니다. 어느 한순간 눈을 찌르고 가슴을 찌르듯 다가오는 빛이 있어 그 바퀴살과 햇빛과 눈의 각도를 이리저리 맞추어 보며 조금 전 그 강렬한 빛의 반사를 다시 한번 당신 눈에 담고

싶어지던 때는 없었는지요.

살아가며 당신에게 단 한번이라도 그런 기억이 있다면, 지금 바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읽는 내내 나는 아침 풀밭길의 이슬과 자전거 바퀴살에 부서지는 햇빛을 생각했습니다. 책머리에 김훈은 “살아서 아름다운 것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어느 대단한 기자는 “미문에 대한 과도한 경사가 유감스러운 결과를 낳”았다고 했지만 나는 살아서 모국어로 글을 쓰고 읽는 동안 김훈의 「자전거 여행」만큼 힘차고도 아름다운 문장을 흔하게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책 본문 어디에서도 “포즈만 무성한 드라이아이스과 문장”을 보기는커녕 모국어로 이룰 수 있는 한 경지가 책을 읽는 내내 은빛 자전거 바퀴살에 부서지는 햇빛처럼 내 눈에 부서지고 내 마음에 부서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얼굴을 움직이며 그 힘차게 부딪쳐오는

빛의 반사를 다시 내 눈에 담듯 앞뒤로 책을 뒤적여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을 끌고 다닌 그의 자전거 이름은 풍륜이었답니다.

정끝별 시인은 김훈의 자전거가 우리 산하 굽이굽이의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학과 종교학을 종하고 횡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진정 높은 것들은 높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마련인가 봅니다. 문장 또한 그렇지요. 닿지 못하면 자신이 닿지 못할 높은 것들에 대한 되지도 않을 트집이나 잡게 되는 것이지요.

이 지면을 빌어 나는 당신을 당신의 허리높이 만큼에 있는 풍륜의 뒷안장까지만 안내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높은 것들에 대해서는 앞자리에 앉아 힘차게 페달을 밟는 우리 시대의 처사 김훈이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 이순원(소설가) ( 2000-09-16 )

 


 

한겨레 

언론인 김훈(52·<시사저널> 편집국장)씨가 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펴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스스로 `풍륜'(風輪)이라 이름붙인 자전거를 타고 전국의 산천을 주유하면서 만난 풍경과 사람에 관한 글들이 묶였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이 보편화한 시대에 자전거 여행에 관한 글이란 새삼스럽고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자전거를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를 탈 때 탈것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 인간의 몸과 자전거의 바퀴는 동일한

기계의 연결된 부품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통해 세상의 길들은 인간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몸이 곧 길”이라는 깨달음은 이러한 경험의 직접성에서 온다.

 

자전거를 예찬함에 있어 그가 에너지 절약이나 환경 보호, 또는 건강 따위를 들먹이지 않는 것은 역시 그다운 노릇이다. 대의명분이나 공익성 캠페인을 그는 생래적으로 싫어한다.

그가 미뻐하는 것은 고독한 단독자의 실존적 고투.

진도대교를 여행하며 쓴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라는 글이 시사적이다. 여기서 그가 되풀이 강조하는 것은 이순신의 무인(武人)적 단순성이다.

이순신에게서 그가 사는 점은 충군애족의 신념이나 고결한 인품과 같은 덕목이 아니다. 수군으로서 “그는 바다의 사실에만 입각해 있었다.” 무인으로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었다.

자전거의 육체성에 대한 성찰, 그리고 무인적 단순성에 대한 예찬에서 짐작되듯이 그에게 `문약'(文弱)은 혐오의 대상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금언은 그가 보기에 기만적이다.

그보다는 “문(文)은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으로서 무(武)를 동경한다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정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이 내뿜는 `문향'(文香)은 아찔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글의 매력이 한갓 장식과 수사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자전거 바퀴를 굴리듯, 결코 조급하지 않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독자는 거의 종교적 법열과도 같은 `깨달음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서해는 조국의 여성성이다” “몸이 기진했을때, 풍경은 기갈처럼 몸 속으로 파고든다”와 같은 금언투의 문장들에 매혹당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은 얼마나 치열한 사고와 말 고르기를 거쳐 나온, 고승의 사리와도 같은 추출물인지를 알아차리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남들이 알아차리거나 말거나 그의 자전거 예찬은 계속된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최재봉 기자 ( 2000-08-07 )


 

한겨레신문 

우리 청소년들은 늘 지식을 늘리는 일에 골몰하며 산다. 하지만 도야해야 할 것이 지식만은 아니다. 감성 또한 도야되어야 한다. 대체 느낌이 없고야 어떻게 지식을 자아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느낀다는 것도 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느끼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느낌은 오는 것, 오시는 것이지만, 받아낼 줄 모르는 사람에게 느낌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잘, 그리고 깊게 느끼기 위해서는 그렇게 느끼는 예를 살펴 따라 해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만한 책도 별로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라는 바늘로 국토를 이불 누비듯 엮어간 바늘땀이 맺혀 있는 책이다. 그렇다. 땀이 베어 있다. 육체와 기계의 절묘한 타협점에 자전거가 있고, 그 위에 몸을 태우고 몸을 저어 땀을 내며 앞으로 가는 김훈이 있다. 그것이 속도를 만들어 바람이 그의 귓가를 스친다. 그렇게 내리막길에 땀을 씻어 내리는 바람을 맞을 때 문득문득 닥쳐온 풍경, 사람, 사물의 표정들이 이 책에 여린 무늬로 새겨져 있다.

이만한 땅에 대한 사랑, 길에 대한 사랑이 있을까? 제 국토를 아끼는 책으로야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도 있다. 그 책엔 현학적일 정도로 지식도 풍성하다. 하지만 함부로 과거로 후퇴하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며, 그 시간 속으로 역사와 사람과 풍경과 사물을 끌어당기기며, 가득한

느낌의 세계를 전하는 것으로야 <자전거 여행>이 한 참 윗길이다.

책을 읽다보면 때로는 스스로 `가엾은 수사학'이라 한 그의 미문이 때로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 너무 고와서 탈이다 싶다. 그래도 그의 마음이 그리 미친 느낌에 잠긴 적 있음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란 믿음을 잃게 되지는 않는다.

그는 선암사 화장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 엉덩이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엉덩이가 허공에 뜬 것처럼 상쾌하다. 똥을 누기가 미안할 정도로 행복한 공간이다.… 건강한 몸이 음식물을 아름답게 처리해내듯이 이 놀라운 화장실은 인간의 몸밖으로 나온 똥을 아름답게 처리한다.

… 똥으로 하여금 스스로 삭게 해서 똥의 운명을 완성시켜 준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소망 한가지. `아, 선암사 화장실로 똥누러 가고 싶다.'

- 김종엽(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 2001-03-10 )


 

한국경제신문 

 "술마신 뒷날 아침, 간밤의 그 미칠듯한 슬픔과 미움과 악다구니속에서, 그래도 배가 고파서 집어먹은 두부김치며 낙지국수가 똥의 원만한 조화에 도달하지 못한채 반쯤 삭아서 가늘게 새어나올때, 나는 화장실에서 처자식 몰래 울었다. 육신을 먹여주고 쓰다듬어주지 못한채 육신과 싸우고 나온 날똥.덜 삭은 재료가 지르는 덜 삭은 비명은 계통없는 아우성이었다"

 

우리 시대 최고 산문가 중의 하나인 김훈씨의 에세이 <자전거여행>이 출간됐다.

 "밥"을 벌기 위해 "날똥"같은 인생을 팔아야하는 52세 저널리스트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장 뜨거운 날에 가장 굵고 향기로운 소금이 "온다"고 했던가. 슬픔을 연해 되새김질하는 김씨의 눈길은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처연한 삶을 향한다.

"공깃돌만한 콩털게도 애처로운 갑옷을 입고 있다. 아무런 방어의지도 없는 그것은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갯지렁이의 집은 밀물에 곧잘 휩쓸려 내려간다. 그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

새 구멍을 내야한다. 갯지렁이의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은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많은 살아 있는 것들의 터전을 꾸민다"

김씨의 산문을 읽는 즐거움은 홑으로 된 글이 겹으로 열리는 신비다.

저자는 그림자로 존재하는 산수유꽃이나 더이상 자라지 않고 단단해지는 대나무에 대해 말할 뿐이지만 독자는 거기서 삶의 알레고리를 읽어낸다.

차에 대한 다음 글을 보자.

"찻잎에는 독성이 있다. 덖음은 차의 독성을 제거하고 잎 속의 차맛을 물에 용해될수 있는 상태로 끌어내는 일이다. 그날 딴 차는 하루를 넘기면 안된다. 무쇠솥에 찻잎을 넣고 두손으로 주물러가며 볶아낸다. 덖음질을 오래한 사람들은 열 때문에 손마디가 구부러져있다. 불은 흔들려서도 안되고 연기가 나서도 안된다"

차를 덖는 것은 예술창작과 같다. 독한 마음자리가 없으면 작품은 잉태되지 않는다.

원한과 치욕을 녹여 무기이자 악기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열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감내한다.

김씨의 관찰력과 상상력은 삶의 고단함에 기초한다.

감은사지3층석탑에서 나무로부터 돌로 넘어가는 과정의 망설임을 읽어내고 안동하회마을 골목에서 "도저히 버릴수 없는 욕망을 비스듬히 껴안고 가는 이의 품격"을 말하는 이는 아마도 김씨뿐일듯 싶다.

문학평론가 정끝별씨는 "진정 깊은 것들은 깊은 것들 속에서 나오게 마련"이라며 "처사 김훈의 언과 변은 강과 계에 가깝다"고 했다.

삶의 허무를 "가장 빈곤한 한 줌 언어"로 감싸안은 김씨의 산문은 "아,아무것도 만질수 없다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라고 나는 써야하는가. 사랑이여,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라는 자서를 달고있다.

- 윤승아 기자 ( 2000-08-10 ) 

 

  

낡은 자전거 -안도현-

 

너무 오랫동안 타고 다녀서
핸들이며 몸체며 페달이 온통 녹슨 내 자전거
혼자 힘으로는 땅에 버티고 설 수가 없어
담벽에 기대어 서 있구나
얼마나 많은 길을 바퀴에 감고 다녔느냐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많이 알수록
삶은 여위어가는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자전거야
자전거야
왼쪽과 오른쪽으로 세상을 나누며
명쾌하게 달리던 시절을 원망만 해서 쓰겠느냐
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잘 잡았기에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이만큼이라도, 왔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氣盡)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 자전거를 왜 타는가? 건강을 위해서? 아니다. 그냥 그 시간만큼은 행복하니까...ⓒ 2009 한국의산천

주말이 내일로 다가왔다.장마와 함께 ... 그래도 떠날것이다.

덕적도 투어를 계획했으나 장마에 따른 일기 불순으로 배편의 차질이 예상되어 가까운곳으로 돌아봐야 겠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해도,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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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의산천
글쓴이 : 한국의산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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