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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째 뚝 떨어지는, 예측불가의 멈춤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미련 없이…
새무엘 베케트도 "내 삶이 가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몰랐다"고 '몰로이'에서 고백했다. 몰랐다고 한 그것은 바로 시간. 삶을 지탱시켜 주는 시간. 정작 삶이 어디로 가고 있을까를 아는 이 얼마나 되랴. 죽으면 유해를 산야에 그대로 버려 천지를 관뚜껑으로 삼는다는 장자면 몰라도. 달리도 1931년에 그린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에서 녹아 내리는 시계를 그려 화단을 흥분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녹아드는 시계의 이미지. 시간 조차 녹아드는 듯한 그 그림을 한참 보다보면 대체 시간이 무얼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세슘 133 원자가 특정한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준위로 넘어 갈 때. 그 원자에 의해 방출되거나 흡수되는 전자파의 주파수가 91억9천263만1천770회 반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초(秒). 1초가 이렇게 엄청나다니. 이렇게 대단할 수가. 그런 시간. 시간을 두고 과학의 위대성이 돋보이는 수치다. 이만한 수치면 지나간 시간들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남은 시간들도 누구에게나 넉넉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희망적인 시간. 그러나 그 시간도 멈춤은 한 순간. 마치 능소화가 시들지 않고 송이 째 떨어지는 그런 시간의 멈춤과 흡사하다. 뚝. 떨어지는 능소화. 아무도 예측 못하는 멈춤. 시간의 멈춤. 능소화는 능히 그렇게 현란하게 최후를 마감한다. 시들기 전에.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미련 없이. 장마도 시작됐다. 오죽 예보가 맞질 않으면 장마라는 용어를 버리려 할까. 대신 건기와 우기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맞추기가 훨씬 쉬워서 일게다. 비오면 우기고 비 안 오면 건기. 장마에 비해 그러나 가뭄은 여전히 그 말의 위세가 당당하다.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던 선조들의 지혜마저 기후변화, 온실효과, 오존층 파괴, 수질오염 등으로 '석 달 우기에는 못 산다'로 바꿔야 할 처지다. 아무래도 좀 어색하다. 그러나 어쩌랴. 장마라는 말이 없어질 판이니. 심훈이 '상록수'에서 "장마비는 그대로 초록 기름인 듯하다. 연 닷새를 거푸 맞고 난 볏모는 떡잎에 까지 새파란 물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기름기 있는 장마비가 점점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으니 그게 아쉬울 뿐. 환하게 핀 능소화가 장마나 우기를 구분 않고 붉게 요염한 자태로 담장을 넘는다. 곡선의 그 줄기는 무엇이라도 휘어감을 듯 자신이 있다. 그래서 산 나무도 죽이고 그 위에 꽃을 피울까.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아래서는 왜 또 하필 능소화 줄기에 혈흔이 발견됐을까. 그 무슨 용한 인연들이기에. 양반 꽃. 작가 조두진의 '능소화'에는 하운스님의 말을 빌려 능소화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소화는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원래 이 세상의 꽃이 아니라 하늘의 꽃이라고 합니다. 하늘정원에 있던 꽃을 누군가가 훔쳐 인간세상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따를 것이 없고 사람들이 다투어 어여삐 여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궁궐과 양반가에서 그 꽃을 심고 즐겨온 것이 수 백 년이옵니다. 워낙 기품 있는 꽃인 만큼 양민이나 천민들은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꽃이옵니다. 상민이 제 집에 소화를 심으면 이웃 양반가의 노염을 사 매를 버는 지경이지요. 누구나 가까이 하기엔 아까우리만큼 기품이 넘치는 꽃이기 때문이옵니다. 사람은 소화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기 십상이나 그 속에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독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그러나 능소화의 독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실은 능소화에는 독이 없다. 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때로는 눈이 먼다. 돈과 권력에도 얼마든지 먼다. 사랑에도 눈이 멀고, 잘 사는 이들은 더 잘 살기위해, 사는 게 힘든 이들은 심지어 한 끼의 끼니를 때우는 일에도 가차 없이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은 정확하다. 루크레티우스는 이런 인간들의 '눈 멈'에 대해 일찍이 "정신의 과오를 눈에 전가하려고 하지 말라"며 반듯한 충고를 하지 않았는가. 요즘처럼 정신 나간 위정자들이 많은 시대. 그들이 깊이 새길만한 말이다. 그대들을 바라보는 가엾은 민초들 눈을 생각한다면 '정신'의 '잘못'을 '눈'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술수는 쓰지 않아야 한다. 난데없이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만이 어디 변화와 쇄신인가.! 점점 능소화가 아름다워 지는 계절. 내 훗달 까지는 여전히 저 자태로 고고한 품위와 우아한 넓은 꽃잎으로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겠지. "너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타고 있는/ 내 여린 가슴의 엔진/ 급브레이크를 잡았으나// 네 중심을 향해 쏠려 가는/ 내 마음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한참이나 더 밀려갔나니// 대바늘로 허벅지를/ 콱콱 찔러도/ 오므라들지 않는/ 붉고 노란 꽃 입술// 담장을 뛰어 넘어/ 네 발목과 종아리와/ 허벅지를 타고 오르며/ 달변의 혓바닥으로 유혹하는." (고영섭의 '능소화' 전문) 그 아름다운 꽃 잎 아래는 그러나 담쟁이 넝쿨처럼 줄기의 마디에는 흡발이라 불리는 뿌리가 있다. 그런 발이라야 건물의 벽이나 시멘트 담장이나 나무 등에 붙여가며 하늘로 향해 환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 감춰진 그 무엇이랄까. 어느 사물인들 감춰진 그 무엇이 없으랴. 짙푸른 잎사귀들이 저렇게 싱그럽게 너울거리며 어울리는 가운데 핀 능소화. 오늘은 능소화가 그 줄기와 꽃들이 희한하게 어울리며, 곡선을 그리며 뻗어 가는 소리가 들리는 초여름 날이었다. ◇협찬=대구예술대학교 ◇사진=포토피디 서태영 newspd@empal.com |
글쓴이 / 김채한 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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