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 산26번지 [무궁화공원 묘원]
이곳 무궁화 공원묘원 덕원地區 [0110 번 묘역 / 0110~1 번 묘역 / 0110~2번 묘역] 15평은 우리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잠들어 계실 곳이다. 20년 전에 마련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나는 아버님
을 모시고 오늘 현지를 찾아 답사 확인하였다.위치도 풍광도 좋았다.이곳이 바로 좋은곳 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부친께서는 여러번 이곳을 다녀 오시곤 했어도 나는 이제야 아버님 손잡고
모시고는 돌아보면서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이제 우리 가족 모두는 이곳을 정확히 알
아야 할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2009.12.20 송 정 학
http://www.gravepark.co.kr [재단법인 무궁화공원묘원]
인천 도화동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출발 경인고속 도로를 달려 영등포 ㅡ 여의도 63빌딩을 지나 올림픽 대로에 진입 하였다.
한강철교 밑을지나 올림픽대로를 따라 잠실종합운동장ㅡ천호동ㅡ명일동ㅡ구리시ㅡ서울 춘천간 고속도로에진입 양평방향으로 30분을왔다
서종 IC 교차로 안내판을 따라 우 회전하여 북한강을 따라 서종면사무소 까지는 10여분을 달렸다.
구리시 입구에서 시작된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를 달려와 서종IC에서 右회전 하여 북한강을 따라 3.3km 내려와
서종面 事務所무소를 지나 左회전 하여 약5km를 봉북쪽으로 가면 도장리 마을이 나타나며 무궁화 묘원이 보임.
서종면사무소 안내표시판을 가르키는 방향으로 左 회전하여 문호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북한강 ㅡ길게 북한강을 가로질러 보이는 큰 다리는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 이다 ㅡ
서종 IC에서 부터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사무소ㅡ양평 양수리를 가로 지르는 363번 국도변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위락시설과 콘도미니엄
서종면사무소를 지나 좌회전하여 약5km를 가면 안내판이 나오고 무궁화묘원 방향으로 좌회전해 1km를 가면 무궁화공원묘원이 나타난다.
무궁화 공원묘원 관리사무소와 구내식당
무궁화공원 묘원 전경 [ 1 ]
무궁화 공원묘원 中央에 위치한 주차장 공터와 가족단위묘원이 비교적 넓게 조성되여있다.
앞에 보이는 묘원이 완전 대리석으로 포장 되여있는 것은 [ 가족단위 24기 납골묘소 ]이다.
돌 계단 (157계단)을 쉬엄쉬엄 오르시는 부친과 운전기사.
부모님을 직접 선산 선영에 모시려고 모든 절차를밟아 종친회에 비용도 납부 준비해놓았는데[화성군 화수리 선영]....어느날 흩어져 있던
조부모님 내외분을 그곳 선산 부모님이 가시도록 마련해 놓은 곳에다 조부모님을 모셨다.부모님은 조부모님을 위해 스스로 포기한것이다
그리고 그무렵 이곳에 우연찮게 한 동네 知人들로부터 제의를 받았고,이곳을 와 보니 그당시 지금처럼 이렇게 잘 정비야 되지않은 초창기
였지만 공원묘원 덕원지구 맨위 만댕이에 위치한 60평위에 부모님 두분이 함께서니 수려한 풍광에 북한강을 내려다 보이는 이곳이야 말로
우리가 와야 할 곳이구나 하고 결정을 하셨다고,하였다.ㅡ맨위 밟고 오르는 길이끝나는곳에ㅡ字석축이 쌓여진 묘터가 덕원지구0110 이다
이곳에 오면 그렇게 좋으시단다.그러나 가볍게 오르기 시작하신 아버님 발걸음은 중간쯤 오르시더니 힘겨워하시며 쉬여가자고 하셨다.
그도 그럴것이 엊저녁 밤샘 근무를하셨고,주무셔야하는데 오늘오셨고..지금 아버님[1924년4.25(음)에 탄생]은 연세가 여든다섯아닌가?
얼마만에 아버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일까?.등뒤에 부친에 두툼한 손을 나는 꼭 쥐여 보았다.
무궁화공원 덕원지구 가족묘원 앞에서 내려다 본 전경 [ 2 ]
[큰 애야] 쉬여가자...하신다. 부친께서는
아버님께서는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몸은 피곤하신가 보다.몇번을 쉬신다.엊저녁엔 밤새 근무를하시곤 오늘부터 4일간 휴가를 내셨다고했다.
20여년 전에 이곳 공원묘원(가족묘원15평)을 마련해 놓고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지금 내 나이 팔십 중반이다만 10년전만해도
혼자 울적할땐 인천에서 청량리까지 전철타고 와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로 가라타고 양수리까지 와서는 다시 이곳 도장리 무궁화묘원에
올라 왔다가면 하루가 저물곤 했다하신다.이제 걸어서 다시 이곳에 나들이 나올 수 가있을까 모르겠다만 아름답게 가꾸워져있어 좋다고
말씀 하신다.휴가 내게해 큰 애와 함께 오늘왔으니...이젠 더 마음이 가볍다는 듯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며 미소를 지으신다.아버님이..
몸은 예전 같지 가 않아도 마음은 가벼웁다고 하시며 오랜 만에 산엘 오니 좋다고 하신다.
아버님은 쉬엄쉬엄 걸으시고.등 뒤에 함께 온 기사는 볼일(ㅅ) 보려는 폼이다.
이곳이 덕원지구 맨위에 위치한 0110번~0113까지 4인의 가족 묘역60평이다.ㅡ가운데 석축이 쌓여있고 석축 담으로(ㄷ)구분되여 있음 ㅡ
부친께서 묘역에 발을 밟으시더니 두번째 위치에 먼저 안장된 한무남 묘소에 경건한 표정으로 모자를 벗고 예를 드리며 걷고있다.
ㅡ어찌 되였건간에 먼저 간 사람이 형이라 던가? 부친께서 보여주신 예의를 다 하시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애틋함을 알게 해주셨다ㅡ
이곳 묘원 60평이 네가족 ( 송기문 / 한무남 / ㅇㅇㅇ / ㅇㅇㅇ / 順이다 )이 공동 분양받아 각자 15평씩 분할하였고
현재 작고하여 안장된 한무남의 묘소가 두번째 위치해 있고 사진에서 좌측에 첫번째가 우리(송기문)묘원15평이다
그리고 운전기사와 부친께서 가르키는 우측에 (새번째15평 네번째15평) 공터가 또다른 가족이 사용될 묘원 이다.
아버지와 큰 아들 ㅡ 봐라 ! 위치가 얼마나 좋으냐?고 아버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 묘원에서 바라다 본 풍경이다 확트여 내려다 보이는 북한강변.한 눈에 들어오는 산(山)과 강(江)풍경은 정말 조용하고 수려했다.
이곳에서서 부친께서는 말씀하셨다.살아서 보고 마음에들어 마련해 둔 이곳에 생을 다하고 내가 편히 잠들어 있다면 명당이겠지-하고
이곳 60평을 네가족이 함께마련하여 20여년 동안 관리해 온 덕원지구[ 0110 0120 0130 0140 ]묘역
(-0110 : 우리 묘역/ 0120 : 한무남묘역/ 0130:ㅇㅇ묘역 / 0140 :ㅇㅇ묘역 )물론 명의는 따로 따로 되여있다.
그동안 잘 관리되여온 우리 묘역이다.
이곳 우리 묘역 15평에는 5평씩 3인의 묘역을 쓸수도있고 2인을 합장 매장봉안할 수 도있고 뜻을 모아 15평을 저 아래 납골 묘역 처럼
(16기 또는 24기) 설치하여도 된다는 관리소 담당자의 설명이 였고 가족 납골 묘역을 만드는 설치비용은 1000~1500만원 이라고 했다.
우리 묘역만이 석축을 쌓아 잘 관리되고 있었다.
한 무남 이웃은 천주교 신자라 했고.먼저 타계하여 혼자 묘소가 만들어져 있어도 훗날 한무남 아내와 합장 예정이라 했다.
두번째 자리잡고있는 한 무남 묘소의 비석
이제 아버님께서는 이곳 묘역을 설명하시고 함께 답사한 후 먼저 내려 가시며 이곳을 응시하신다.누가 뭐라해도 당시에는 여려웠어도
이곳을 선택하여 둔 지금은 말할 수 있다.크게 할일 이만큼 덜었다고...있어서가 아니라 미리 이렇게 준비해 두는게 어쩜 마음에 평정을
찾는 것이고...결코 욕되게 하는 행동과 마음이 아닐 것 이라는 것을 말이다....
덕원지구 우리 묘역에서 바라다 보니 무궁화 공원 묘원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무궁화공원 덕원지구 가족묘원 앞에서 내려다 본 전경 [ 3 ]
처음에는 좀 더 있다가 부모님 묘역을 마련해 두어도 될터인데 하는 마음을 먹었던 것도 사실 이였지만,,,,,,,,가족 모두가 뭘 그리
서둘러야 하면서 까지 이래야 되나 했지만....이렇게 와서 보니 이곳을 소개했던 이웃 知人들의 애틋한 마음이나 부모님의 마음을
나는 이해 하게 되였다. 우리 가족 모두가 이곳 가족 묘원에 대한 생각들 만큼은 부모님 마음과 나와 모두가 같았음 하는 바램이다
등 뒤로 멀리 양평 양수리 부근이 시야에 들어왔다.수려한 경관이 그렇게 좋지 않은가 ?.
아버님께서는 마른 길을 먼지나지 않게 걸으며, 요령 피우지 않아서 젖은 길은 푹푹 적시면서... 막힌 길은 찬찬히 더 돌아서 오신 걸 안다
아버지는 그렇게 먼 길을 걸어 오셨다. 이제 나는 정말 이해를 한다.-그렇게 움직이면서 한움쿰 밖에 되지않는 걸 모두 훈이에게 쥐여 줘
야지 하는 애틋한 마음들을...그러면서도 묵묵히 계셨는데/도리여 어찌될까 하는 생각에 내 못하겠다는 얘기로 엉망으로 흩으러져 있는게
지금 이지만..모든게 잘 풀어 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
가까운 길 이든 먼 길이든 늘 먼 길이라 여기며 걷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화상처럼 제모습을 솔직히 들어내고 인생길을 굽어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버님 께서는 올라 왔던 계단을 밟으며 내려오시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무슨 생각을 하시는걸까? .......
아버님께서는 오늘 공원묘원을 함께 답사를 하시곤 오늘 부터 4일간 휴가를 내셨다고 했다.푹 쉬며 너희 엄마를 돌보시겠다고했다.
그리곤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고 하셨다..[큰애와 함께 공원묘원을 가서 확인해 너무좋아서 무리했었나보다]ㅡ라고하셨다.
1989 년도 말쯤 경기도 화성군 화수리 선산에 부모님 묘역을 쓰기로 하고 그 당시 300 여만원의 금액을 마련 직접드려
지불토록 하였고 부모님 묘역은 선산에다 모시기로 하였는데....어느날 부모님 께서는 너희들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가
따로 따로 흩여져 있는걸 선산에 모시기로 했다고 하시며 이제 선산에는 우리(부모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결정했고 부모님이 사용할 자리에 할아버지 할머니 묘역을 이장하였다.솔직히 당시에는 많이 서운했다. 그래도
부모님을 이해 할 수 가 있었다.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어느날(1990년 여름) 어머님께서는 지금 현재 장사를 하는 이곳
인천 주안 /도화동에서 각기 다른 업종에 종사하며 사는 형제 같은 이웃들 3명 (한무남 外2명)이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 산 26번지 소재 무궁화공원 묘역 제일 좋은위치에 60평을 분양받았는데(한집당15평x4명)3명이 뜻을 같이했으나
당시 1명이 모자라 평소 존경하고 제일 연장자인 부모님께 제의해 왔다고 했다 (모친께서 당시 영신 한복상회 하셨음)
분양금액은 660만원 이고 5년에 한번씩 관리비를 50 ~60만원 납부해야 한다고 했고 현장을 가보니 위치도 전망도 좋고
이번 기회에 이곳을 마련하고 싶다고 연락을 나에게 해 왔다........솔직히 부모님 가실 자리에 조부모님을 모시곤 많이
허전한 상태였을것이 부모님 마음이 었을것이다.그런 연락을 받은 당시에는700여만원에 돈이 나에게는 없었던게 사실
이 었다.그렇다고 아내와 얘기를 해 본다고 해도 돈은 마련이 될수 없을 것이고.................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났다
아무도 모르게 경리부에가서 퇴직금 담보 대출을 냈다.그리고 660만원을 어머님께 드렸다.지금에 공원묘원15평 분양을
받은 것이다.그렇게 하곤 아내와 실강이를 했다.먼저 상의하고 처리 했으면 될것을 아무 말 없이 혼자 처리해 놓고 얘기
하면 그게 의논이야요? 통보지 하며...부부싸움도 크게했었다.이제 생각하면 아내말이 맞다.모친과 속닥거려 그렇게 집
안 일 처리하는게 어디있느냐? 고 서운해 하며 얘기하던 아내가......그렇게 하여 지금에 부모님에 공원묘역15평을 마련
하였던 것이다.
오늘 [2009.10.19.] 새벽 5시에 기상하여1시간동안 학교 정리하고는 06시18분 계명대 역<지하철 2호선>을 출발
07시08분 동대구역에서KTX 서울행 열차로상경(09:06서울역도착/10:20인천 주안역도착 부모님 뵙고 인사드림)
12:25 선경TAXI 대절하여 부친과함께 택시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 산26번지 무궁화 공원묘원으로12:30
인천 도화동 본가를 출발 경인고속도로 ㅡ 영등포ㅡ 올림픽대로 ㅡ 천호동ㅡ워커힐H ㅡ 암사동ㅡ구리시내입구
경춘고속도로(2009.8 개통)진입ㅡ서종ICㅡ서종면사무소ㅡ300m지나 左회전ㅡ무궁화공원묘원<14시40분 도착>
오늘 현장을 부친과함께 답사한후 관리 사무소를 찾아 궁금한 사항도 알아 보았다.한결 마음이 가벼웠다.그리고
우리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서 인천으로 돌아왔다 2009.10.19 송 정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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