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 이진명(1955∼ )
동물도감에서 본 곰은 뚱뚱하고 말이 없다
제 덩치만 한 큰 나무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있다
어디서 훑어 왔는지 한 움큼 덩굴을 손에 쥐었다
그 덩굴에 달린 열매들은 제 눈처럼 까맣게 익었다
손 하나는 머리께를 짚고 있는데 무언가 멋쩍은 짓이라도 한 듯한 시늉이다
곰은 바윗덩어리를 만나면 먼저 받아본단다
물러섰다가 그 바윗덩이가 꿈쩍할 리 없는데도 또 다시 받아본단다
(중략)......
마을에서 올라온 저녁연기가 덩굴나무에 감겨 산봉우리를 가릴 때
그럼 곰은 제 동굴로 천천히 돌아가겠지, 돌아가서
그 눈만큼 까맣게 익어보지 않고는 누구도 모를 그런 잠을 준비할까
곰은 뚱뚱한 몸을 기웃이 여전히 말이 없고
아직도 덩굴 열매 한 알 손대지 않고 있다
........................
‘곰’ 자를 뒤집어보니 ‘문’이다. 이 문을 열고 청계산으로 들어간 말레이 곰이 포획단을 따돌리며
신통한 재주를 부리고 있다.겨울잠이라도 자고 싶었을까.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은 눈으로 시원을
향한 꿈이라도 꾸고 싶었을까. 곰곰 따져보자. 곰에 홀려 입산을 하고 싶은 삶들은 없는지.........
<손택수·시인>
[출처] 2010.12.14.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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