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봄바람에게 [중앙일보] 입력 2011.05.21 00:08
봄 바람에게
- 홍신선 (1944~ )
이맘때가 되면
허공에서 뛰는 바람들에게도
암컷 수컷 따로 있어 암컷 떼 수컷 떼로 몰려다니는가
정말 4원소 과(科)에서
양성생식 과(科)로 단번에 과전환 시술했는가
서로 참혹하게 어르고들 뒹구는지 물고 빨고들 핥는지
해종일 흉골에서 늑골까지 우두둑우두둑 뼈 부러지는
괴성들 토해내는가
먼 황사 속 벗겨낸 침대 시트만 한
하늘 죽어 떠 있는 날.
[ 시 평 ]
먼 옛날 바람은 물, 불, 흙과 함께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재료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 바람은 ‘황조가’ 의 그 누런 새들 같아서 암수 서로 정답기만 하구나. 춘정
(春情)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예 19금(禁) 동영상을 찍는 바람도 있다
어찌나 “서로 참혹하게 어르고들 뒹구는지 물고 빨고 핥는지” 서툰 접골사가
힘만 센 거 같아서,여기저기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질펀한 황사가 침대에
흘린 누런 물 같다. 저 하늘은 ‘아이고 나 죽네’ 를 연발하다가 기어이 사망하시
었다. 큰 시인의 해학이 하늘 전체를 ‘침대 시트’로 만들어 걸었구나. 거기에 몸
누이고 싶은 날들이다. <권혁웅·시인>
2011.5.23. 헛 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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