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아침] 순간의 거울 2 - 가을 강
[중앙일보] 입력 2011.10.21 00:39 / 수정 2011.10.21 00:39
백목련 Magnolia denudata
순간의 거울 2 - 가을 강
- 이가림(1943~)
가랑잎 하나가
화엄사 한 채를 싣고
먼 가람으로 떠난 뒤
서늘한
기러기 울음
후두둑 떨어져
물거울 위를
점자(點字)인 양 구른다
노을 타는
단풍밭
보랏빛 이내에 묻히고
(… …)
가랑잎 하나가
가을의 끝
한줌 허무를 싣고
먼 어둠으로 떠난 뒤
무성하던 잎을 죄다 떨구었는데, 생의 미련을 채 버리지 못한 한 장의 가랑잎이 백목련 가지
끝에 남아 파르르 떤다. 가을 가뭄에 목이 마른 가랑잎도 바짝 말라 붉게 상기됐다. 한해 노
동의 짐을 채 덜어내지 못하고 매달린 가랑잎에 가을의 끝이 살랑인다. 한없이 가벼워진 한
잎에 지리산 깊은 골 화엄사만큼 깊은 표정과 무게가 담겼다. 세상의 모든 저녁 풍경을 닮아
숱하게 많은 곡절을 간직한 한 잎의 속내다. 기러기 울음 몰고 온 바람 차고, 붉게 물든 갈잎
들 우우 낙엽 하는 가을 숲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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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22. heot ttokg 하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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