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나도 고향에 가고 싶다[중앙일보] 입력 2012.01.21 00:00 / 수정 2012.01.21 00:00
#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퇴임 후 서울서 고향인 경북 의성 다인까지 240㎞, 600여 리를 7박8일에 걸쳐 걸어갔었다
“언젠가 영구차 타고 갈 곳, 두 다리 멀쩡할 때 걸어서 가보겠다”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얼마 전 그가 고향
까지 걸어갔던 길을 오늘(07:05)과 내일(00:25) 방영될 JTBC ‘정진홍의 휴먼파워’에서 재현하려고 동행했다. 오전
8시에 정 전 총장이 사는 한남동 집을 출발해 자정이 다 돼 다다른 그의 고향집에 들어섰을 때 반겨준 것은 은근한
달빛뿐이었다. 그 달빛 아래 그가 한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항상 고향집에 올 때는 어두운 밤이었죠. 한 번도
낮에 오질 못했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 그렇다. 언제부턴가 고향은 늦은 밤 도둑처럼 들었다가 해 밝기 무섭게 등지는 그런 곳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
렇게라도 다녀올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거다. 아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도 적잖기 때문이다. 정 전 총
장이 내게 물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론 나는 서울서 태어나 자랐다. 하지만 내 고향은 서울이 아니다. ‘평안남도
강서’다. 내 아버지의 고향이고 내 마음의 고향이다. 몇 해 전 평양에 갔을 때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바람 속에서조차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혼이 나와 동행하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는 것을.어린 시절 설이 되면 우리 집은 즐겁기는
커녕 우울했다. 아버지가 늘 우셨기 때문이다. 남자가 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난 그때 알았다. 상을 차려놓고
하염없이 우는 아버지를 보면서 내게 고향은 ‘눈물’이었다.
#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연히 헌책방에서 『강서군지』를 봤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강서군민
회’에 갔던 기억이 나 곰팡이 핀 군지(郡誌)를 사서 들고 왔다. 곰팡이를 털고 눅눅하게 빛바랜 책을 그늘에서 말려
거풍(擧風)’한 후에 조심스레 첫 장을 열었다.누렇게 뜬 초지 뒤로 흐릿하나마 강서군 전경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눈
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나의 시선과 아버지의 시선이 거기 함께 꽂
혀 있었다. 그 사진엔 옥수수밭이 지천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우리 집 마당에 옥수수와 피마자를 잔뜩 심었다.
정원에 옥수수와 피마자를 심다니….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에겐 마음의 고향밭이었고 그렇게 해서라도 실향의 아
픔을 달래고 싶었던 것임을 철들며 알았다.그만큼 아버지의 고향은 서울서 나고 자란 나에게조차 골수에 파고드는
그 무엇이었다.
# 설이다. 이번 설 연휴엔 해외로 여행 가는 인파가 27만2800여 명으로 사상 최대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백 배가 훨씬 넘는 3154만여 명이 고향을 찾아 가히 ‘민족대이동’을 한다. 하지만 “밤에 들렀다 동트기 무섭게 돌
아 나온다”는 말처럼 만 24시간 이상 고향에 머무는 경우가 드문 게 요즘 세태다. 신(新)모계사회의 도래라고 할 만
큼 며느리와 외가의 입김이 세진 탓에 주로 시댁인 고향에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 서
로 떨어져 있다가 오래간만에 만난 탓에 명절엔 “마주치면 싸우니 얼른 헤어지자”는 것이 지혜로운 공식처럼 돼 버
린 요즘이다. 게다가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좁고 불편한 시골집을 기피하는 현상도 이에 한몫하
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귀성길은 설 전날, 귀경길은 설 당일이 가장 붐빌 전망이라고 한다.
가 그리 오래지 않아 올 것만 같다. 결국 이러다 고향에 사시는 부모님 돌아가시면 그나마 한나절이라도 고향 가는
일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명절 때면 고향 생각에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는 나의 모습이 돼
버린 실향민의 아들에겐 이런 걱정마저 사치스럽다. 정말이지 나도 고향에 가고 싶다.
정진홍논설위원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지?]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했지?
지난 해에는?
그것 봐라
기억조차 못하잖니?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닐거야
잊어버려라!
내일을 향해 사는 거야!
ㅡ 리 아이아 코카 ㅡ
Thank you
2012.1.27.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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