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ㅡ 김선우 (1970 ~ )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시인은 우리에게 에로티시즘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 이것이 꽃의 일인가,
아니면 사람의 일인가. 너의 일인가, 아니면 나의 일인가. 아니면 마음의 일인가,
몸의 일인가. 아무래도 그는 삶을 이렇게 죽도록 사랑으로만 살고 싶은 것이다.
언젠가 그의 고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 도시에서 내가 흠모한
어른에게 ‘Harmoniously one!’이라는 말을 귀동냥해 들은 적이 있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2012.11.8.목요일 중앙일보 오피니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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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응”
- 문정희(1947~ )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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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ㅇ’과 ‘ㅇ’으로 만나서, ‘ㅇ’과 ‘ㅇ’이 서로를 당겨 포개는 그 타이밍에 솟아오르는
일출의 말. “응”! 감히 그 말의 속살을 드러냈으나, 오호! 참 천연덕스럽다.고해상도(?)의 돋
보기를 들고 다니며 꽃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인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꽃 속에 놀
라운 균형이 있다고 개양귀비꽃 앞에서 웃었다. 균형은 타이밍이다. 일어난 것이고, 사라진
다. 모든 순간은 미완이자 완성이고, 완성이자 미완이다. 그 어름에서 진리를 보는 사람이
있고, 신을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랑의 시인은 거기서 “응”을 발견했다. 그리고 ‘ㅇ’ 과 ‘ㅇ’
사이에 수평선을 놓음으로써 그 섭리를 보존했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2012.11.3 중앙일보 오피니언 <시가 있는 아침>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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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신등성에 그는 있다.
ㅡ유자효 作 <소나무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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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해 ]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
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
를까요
검은 갯벌엔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
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
니다.
이성복 作 < 서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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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자리를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이 오랫동안 있어온 자리. 그 사람이 가 있어서 잘 어울리는
자리. 그 사람이 가장 편안해하는 그 자리를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사랑을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그 사람의 자리를 빼앗
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그 사
람의 자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상대의 자리를 빼앗는 순간 진정한
사랑은 없는 법. 허연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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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입력 : 2012.11.11 22:25
고장난 자전거, 낡아서 끊어진 체인
손잡이는 빗물에 녹슬어 있었네
고장난 자전거, 한때는
모든 길을 둥글게 말아쥐고 달렸지
잠시 당신에게 인사하는 동안에도
자전거는 당신의 왼쪽 볼을
오른쪽 볼로 바꾸어 보여주었네
자전거는 6월을 돌아나와
9월에 멈추어 섰지
바퀴살 위에서 햇살이 가늘게 부서지네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는
당신이 만든 동그라미를 따라갔지
우리는 그렇게 여름을 질러갔지
고장난 자전거, 9월은 6월을 생각나게 하네
뜯어진 안장은
걸터앉았던 나를 모를 테지만
녹슨 저 손잡이는 손등에 닿은 손바닥을
기억하지 않겠지만
―권혁웅(1967~ )
評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ㅡ 2012.11.12. 조선일보 오피니언 [ 가슴으로 읽는 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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