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대하여
- 신경림(1936~ )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 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중략)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 評 ]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읽으면 위안으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허름하게 살아오고 또 살아가는 처지라
그런가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파장’)는 구절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흥겨웠다
큰 산이 되기는커녕 언감생심 큰 산의 뜻도 품어보지 못한 터수라, ‘산동네에 오는 눈’에서 “ 하늘
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먼저 온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는 정말이지 말이 가슴을 울
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말 그대로 삶 속에서 가슴으로 뜻을 이룬 말이라고 여겼다.가슴에 툭 한번
닿은 다음에는 맥놀이 하듯 퍼져나가는 음률이라고.이 시가 실린 시집을 읽던 이십대에는 시인도
정릉 산동네에 사셨고 나도 노량진 쪽 산동네에 살았는데, “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는 그 말에 그만 녹아버렸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 [시가 있는 아침] 더 보기
2012.10.15.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촬영 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