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트남參戰 그後

베트남 참전50주년, 참전용사 명예회복을

by 하기 2 2014. 9. 12.

 



       


         생각해 봅시다 ㅡ


         [ 베트남 참전50년, 참전용사 명예 회복을 ]




 
 

	안경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조선대학교 교수
 
안경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조선대학교 교수


 
9월 11일은 건국 후 최초로 해외 파병을 한 날로, 한국군 140명이 베트남을 향하여 부산항을 출항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그로부터 8년 6개월 동안 한국군은 32만5217명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5099명이 전사하였고 1만1232명의 부상자, 8만여명에 이르는 고엽제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베트남전으로 인해 국내에 유입된 66억달러의 외화는 국가 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하였다. 파병 직전 연도인 1963년 우리나라 수출 총액이 9300만달러, 대일 청구권 자금이 총액 8억달러(무상원조 3억, 재정차관 2억, 상업차관 3억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볼 때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5000년 가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만든 새 역사의 주역들이 바로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다. 참전 용사들은 고국에 돌아와 과연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참전 용사들은 명예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 용사들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앞장서서 국가를 지키겠는가? 베트남전을 기반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한국은 더 늦기 전에 참전 용사들의 일자리 창출과 재교육, 건강보험 혜택 확대 등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실질적인 명예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그 외에 참전 명예수당 인상, 붕따우시에서 1964년 태극기를 게양하고 이동병원 업무를 시작한 9월 25일을 참전기념일로 제정하는 것 등이다. 정부는 베트남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등을 우려하고 있으나, 베트남과의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이해시켜야 한다. 참전자들의 명예 회복에는 관과 학계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2014.9.12. 금요일  [조선일보] 오피니언
                      ㅡ 생각해 봅시다ㅡ [베트남 참전50년, 참전용사 명예회복을]에서 옮겨놓았음.  하기






1971년 9.13. 베트남 퀴논 북방 [고보이 평원]에서 맹호17호 작전에 참가하여 통신병 김영길 상병과 함께ㅡ하기ㅡ


................................................................................



[世智園] 베트남 파병 50주년
 
기사입력 2014.09.22 17:40:24 | 최종수정 2014.09.22 18:34:50  

 



 
 
   
 
"베트남전쟁은 당위성 논란 탓에 참전 용사들이 치른 희생을 국가는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받아야 할 감사와 존경을 받지 못했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애국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백악관에서 50년 만에 베트남전 무훈이 밝혀진 두 병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전쟁은 잊고자 했지만 희생만은 영원히 기억하는 울림이 있다. 같은 전쟁을 했는데 우린 다르다. 엇갈리는 참전 평가 속에 베트남전은 금기어에 가깝다. 올해가 파병 50주년이지만 정부 주최 행사는 없다. 대한민국월남참전자회에서 25일 그들만의 기념식을 연다. 주월한국군사령부가 창설된 9월 25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도 그들이다. 베트남 참전은 우리에게 기념일도 없이 잊어야 할 과거일 뿐일까.

22일은 50년 전(1964년) 파병 선발대 140명이 사이공(호찌민)에 처음 도착한 날이다. 9월 11일 부산항을 떠났다. 역사상 유일무이한 국외 파병이다. 이들이 붕따우로 이동해 태극기를 게양한 것이 25일이고 1년 후 같은 날 사령부를 창설했다.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전쟁에 32만5217명이 동원됐다. 5099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부상자 1만1232명, 8만여 명에 이르는 고엽제 피해자가 남았으니 베트남전은 `살아 있는 과거`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참전 명분 뒤엔 숙명 같은 가난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도 안 돼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최빈국이었다. 피의 대가로 66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유입됐다. 대일 청구권 자금(8억달러)에 비해 8배가 넘는다. 파병 8년6개월 동안 연평균 8% 이상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반만년 역사 처음으로 보릿고개를 넘었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건 팔순이 넘은 그들에게 우린 월 17만원 참전수당을 준다. 10배는 올려줘도 아깝지 않은데 너무 부끄럽다. 작년 11월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은 "죽어서도 함께하겠다"며 현충원 베트남 순직 사병 묘역 맨 앞에 묻혔다.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는 묘지명은 또 한번 우릴 부끄럽게 한다.

[전병득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베트남의 구찌터널
 
아래를 크릭
 
http://www.youtube.com/embed/BERW1m5sSyk?feature=player_detailpag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