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포 항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진무르고 다친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둥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꼿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
詩 平
사는 일이 암담할 때가 있다. 오래된 상처들이 덧나고,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고 살고 있음을
불현듯 깨닫게 되는 날들."목포항" 은 그런 날에 '내'가 끌리듯 가 닿은 곳이다. 목포항은 흡사
'나'의 내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을 하고 있다.막배 떠난 항구는 스산하고,대기실에는
노파가 쪼그려앉아 짓무른 봉숭아를 판다.아프고,안쓰럽고,다시 아프다.상처받은 자들은 특별
한 행위보다 서로의 존재 자체로 위로 받는다.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상처받은 자는 이미 위로
받은 자이고 어느새 위로 하는 자이다.김선우가 목포항에서'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을 보게 되
는 비밀이 여기에있다.인적 끊긴 항구,가난한 행상 노파,짓무른 복숭아의 내력을 김선우는 '내
몸속의 상처'의 통증으로 느낀다.상처는 타인에게 가는 출구이고,타인을 경유해 다시 '나'의삶
으로 돌아오는 입구이다.이 출구와 입구가 이어져 우리의 삶의 길을 이룬다. 타인의 상처를 내
것으로 느끼는 마음이 사랑임을, 삶의 푸르고 비릿한 생명력 임을 뜨거운 '심장'으로 간파 하는
것은, 이 1970년생 젊은 여성 시인의 출중한 능력이다.상처 난 가슴속에서도 따뜻하게 뛰는 심
장을,김선우는 상한 복숭아를 고르던 그 손으로 정확히 찾아낸다.목포항은 '상처 = 사랑' 의 제
의가 열리는 곳이다.'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 상처를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을 제물
삼아'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 보다/열열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비는 곳. 이상하게
우리를 위무하는 더 큰 상처를 품우려는 이 비장한 결심의 이름은 바로 '사랑' 이다. (^8^)
- 김이수 문학 평론가.경희대 교수 - 2008.7.31.23 :50 .동아일보(7/24)에서옮김 하 기 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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