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들
ㅡ 육봉수 ㅡ
직각으로 완강하던 어깨 반쯤 무너진 채 상경 투쟁 마치고 돌아와 열없이
두살배기 아들 어르고 있는 그이의 무릎 앞 관리비 고지서 모르는 척 들이민 날 밤엔
등 돌리고 누워 잠들기 십상입니다 일 년하고도 석 달을 넘긴 날들
눈앞의 돈 몇 푼보다는 노동자로서의 내 자존심 먼저라던 그 말에 꺼뻑죽어
노동자 아내의 자존심도 있긴 있지 그래 당신 멋있어 멋있어 박수치던 날들
속상해 억울해 뒤척뒤척 뒤척이기도 십상입니다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람 닥칠 조짐일자 텅 빈 공장 휑하니 제 밥그릇 뚝딱 챙겨 발 빠르게 떠났다는
돈 되면 삼키고 돈 안 되면 뱉어내는 사장님 족속들의 밉살맞은 행태보다
돈 안 되는 일 부여잡고도 행복한 사람들 더욱 사랑하고 싶어진다 뚬벅하게 말문 닫고
어느 틈 드르렁 코 골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와 무너진 어깨 다시 일으켜 세우려 곰곰이
아침 밥상 위에 올릴 고등어자반 뒤집을 생각으로 아슴아슴 잠들기도 십상인 그런 젊은
밤이기도 합니다 돌아눕긴 했지만……
ㅡ시평 ㅡ속아서 시집온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미농지에 쓴 편지 한 장에 멀쩡한 혼처 파혼하고 가난한 시인에게
시집온 사람도 있을 테고, 뚜쟁이 말에 속아 제 나이 두 배가 넘는 빈 털터리 한국 농부에게 시집온 베트남
처녀도 없지 않을 터. 민중의 시대인 1980년 노동자에게 시집간 최고 학부의 여학생들은 적어도 자기 신념에
의한 자발적인 선택이었다.“상경 투쟁 마치고 돌아”온 사람 앞에 관리비 고지서 던지고 돌아눕지만, 이내
“아침 밥상에 올릴 고등어자반 뒤집을 생각”하는 고마운 아내들. 하지만 이 정황이 “젊은 밤”의 과거
한때라는 고백이 아프다. 그렇다면 지금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념도 신념도 돼지우리에 처박힌
이 천박한 시대에. ㅡ 장 옥 관 시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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