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글 · 詩 들

나뭇가지

by 하기* 2008. 12. 25.

 

나뭇가지

                                                                                                                           곽해룡

 새가

  날아가자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새가 앉아서 울 때는

  꿈적도 않더니

  새가 떠나자

   혼자서

  오랫동안 흔들린다

 

 

 

  시평 

 

 

종일 겨울비 내렸던 엊그저께,

내 일터의 튤립나무 가지에 찌르레기 한 마리가 앉아 요란스레 울어댔다.

뼛속까지 시린 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잿빛 새 한 마리.

아무리 다급하게 울어대도 새가 앉은 나뭇가지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것은 온종일 졸라대고 애원해도 “꿈적도 않”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닮았다.

보내놓고야 비로소 “혼자서/오랫동안 흔들”리는 우리들의 아버지.

이것이 어찌 아버지와 나의 관계뿐이랴.

  모든 존재는 부재를 통해 현현한다.

어둠이 있어 빛이 있음을 알게 되고 너의 빈자리를 통해 너의 소중함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무성했던 이파리 다 벗은 나뭇가지처럼 소박한 단 두 문장의 시행.

새와 나뭇가지, 두 주인공만 등장하는 단순한 장면의 짧은 동시 형식이지만 이 행간이

품고 있는 정서적 울림은 지극히 깊고 그윽하기만 하니.

                                                                                   장옥관 시인

 

 

 

'좋은글 · 詩 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 중앙시조대상 / 중앙신인 문학상  (0) 2009.01.04
두 개의 꽃나무  (0) 2008.12.31
강구 항 / 송수권  (0) 2008.12.18
[장옥관의 시와함께] 아내들 -육봉수  (0) 2008.12.10
오늘의날씨  (0) 2008.12.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