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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곡선미감 [김성국의 자전거 인생]

by 하기* 2009. 6. 26.

 

 

[曲線美感 2부·(19)] 김성국의 자전거 인생
"길도 마땅찮은데…홍수처럼 몰려나와서 걱정이야"
19살때부터 자전거포를 운영했던 그다
"덕분에 먹고살긴 했지만 요즘처럼 흔해빠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어…
그래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급해"
"그래야 짐 싣는 자전거든, 경주용이든, 산악자전거든,
그 자전거가 지닌 아름다운 곡선의 미를 즐길 수 있지 "
두 바퀴의 곡선. 그 곡선에는 숱한 애환과 아련한 기억들이 실핏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어 더욱 아름답다.
두 바퀴의 곡선. 그 곡선에는 숱한 애환과 아련한 기억들이 실핏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어 더욱 아름답다.
자전거. 서민들의 친숙한 발. 두 개의 바퀴는 바퀴살과 함께 숱한 애환이 뒹굴며 함께 굴렀다. 어릴 때. 처음 배울 때의 두려움. 그것은 잠시다. 어느새 바람을 가르며 질주할 때 느끼는 희열. 그러다 도랑으로 쳐 박혀 누가 볼세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쭙잖아 했다. 그러다 허겁지겁 도망치듯 나와서는 또 달리고. 무르팍에 빨간 약이 마르지 않았다. 어릴 때의 아련한 기억들. 솔직히 지금은 동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꺼번에 많아진 느낌이다. 왜? 편리하고, 건강에 좋고, 친환경적이고, 기름 값 비싸고, 레저나 투어로 각광받고, 멋이 있어서다. 위정자들이 자전거에 눈도장 찍으니 더 붐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구현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그 통에 자전거가 갑자기 힘을 부쩍 받았다. 지자체들은 더 난리다. 4대강뿐 아니라 강이라는 강 그 강변도로는 반드시 자전거 도로가 되어야 한다는 듯 자전거가 대접받는 시대. 자전거로 쉽게 전국을 투어 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하던가.


자전거와 함께 살다시피 세상을 살아 온 김성국씨(64·대구YMCA희망자전거제작소팀장)는 그러나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듯 웃는다. 자전거에 낭만뿐일까 하는 투로. 19살 때 이미 고향인 상주 함창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했던 그다. 자전거로 힘겹게 세파를 헤치며 살아 온 그다. "자전거 덕분에 살아오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흔해빠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김씨는 자전거가 삶의 수단에서 이미 비켜 간 것이 못내 서운한 듯 "자전거 길도 마땅찮은데 이렇게 홍수처럼 몰려 나와서는 걱정"이라고 했다. 길도 제대로 없으면서 무슨 자전거가 이렇게 많으냐는 뜻이다. 그래서 도심이나 변두리나 심지어 농촌의 구석에도 녹 쓸고 부속들이 빠진 채 뒹구는 자전거를 볼 때면 은근히 울화통이 치민다고 했다.


"길가 철책너머, 오래 방치된 자전거를 안다 잡풀들 사이에서 썩어가는 뼈대를, 접혀진 타이어엔 끊어진 길들의 지문이 찍혀있고, 체인마다 틈입히 화석처럼 굳은 피로들, 한 때는 자전거였던 그 자전거/ 한 사내를 안다 새벽, 비좁고 자주 꺾인 골목을 돌아 돌아서 우유 한 병 조용히 놓고 가던 반백의 왜소한 사내, 수금할 때면, 고맙구먼유, 열 번도 더 하던 사내, 유난히 부끄럼 많던 그 사내 무섭게 질주하는 도시, 어느 초겨울 미명의 새벽 차도를 끝내 다 건너지 못한 그 사내/ 그 노래를 안다 빙판 언덕배기 나자빠진 자전거, 깨진 병쪼가리들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앉아 있던 그 노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고 흘러/ 낙엽 한 잎 강물에 떨어져 멀리도 떠내려 왔는데, 가끔씩 새벽속에서 흥얼흥얼 노랫가락 들리고 창을 열면 낡은 짐자전거 한 대 저만치 가는, 참! 오래된 그 노래를 나는 지금도 안다" (최을원의 '자전거, 이 강산 낙화유수' 전문)


지금도 낡은 짐자전거로 우유를 배달하면 그 우유를 사람들은 기분 좋게 마실까. 궁금하다. 기분 좋게 마시지 않을 리 없건만. 짐자전거 혹은 낡은 짐자전거 탓할 리 없건만. 왜 짐자전거는 잊어져가며 나이 지긋한 이들의 전유물이 되어 우유조차 배달하지 못하는 현실일까. 그건 아무나 알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힘들고 힘들게 쌓은 생의 연륜 없이는 알 수 없는 낡은 짐자전거의 '앎'일뿐.


이탈리아영화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영화다. 실업자들이 넘치던 시대적 배경이 깔리기는 했지만 어렵게 구한 포스터 붙이는 일을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수. 그런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도둑맞는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기 위해 점쟁이를 찾는 등 필사적이다. 끝내 찾기는 찾는다. 그러나 도둑 또한 얼마나 어려운 사람인가. 그 낡은 자전거 한 대를 두고 벌어지는 일들이 가슴을 적신다. 낡은 자전거에서 넘쳐나는 휴머니티. 지금 넘쳐나는 우리들의 자전거에서는 어떤 휴머니티가 나올까. 생태체험과 고적순례, 국토순례. 혹은 경품. 그러면서 하루 50㎞ 정도를 타면 한 해 연료비 300만원 경감, 하루 10㎞를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면 연간 나무 49그루를 심는 효과. 어떤 곳에서는 금강송으로 나무자전거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물론 자전거보다는 금강송이 돋보여야 하겠지만.

이중섭이 그린 '구상네 가족'이라는 작품에도 자전거가 등장한다. 세발자전거. 시골 냄새 짙은 안마당에 서너살 아이가 세발자전거를 몰고 구상시인 쪽으로 가는 모습이 정겹게 그려져 있다. 목일신이 지은 동요 '자전거'.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원래는 따르릉 대신 찌르릉이었고 사람 대신 영감이었다. 이런 자전거도 지금은 보기 힘든 시대다. 자전거보다는 유모차가 훨씬 편리하고, 따르릉 거리는 자전거 보다는 훨씬 자극적인 음향을 내야하며 심지어는 바퀴에 LED로 밤이면 화려한 색깔을 내며 달려야 제 멋이라는 시대. 그러다보니 자전거도 갑작스러운 붐으로 일종의 광신으로 변모하려는 듯한 인상을 빼놓을 수 없다.


광신. 영국의 생리학자 홀데인은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광신(狂信)"이라질 않았는가. 물론 자전거에 무슨 광신이 있을까마는 지나친 붐으로 웰빙과 녹색 바람에 관광바람마저 지나치게 어울려 길 없는 질주를 할까봐 하는 소리다. 그래서 김씨는 자전거가 엄청 편리하다며 각별한 애정을 보이기는 하지만 "제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했다. 그래야 자전거는 그것이 짐자전거든, 경주용이든, 어린이자전거든, 산악자전거든, 아트자전거든 그 자전거가 지닌 아름다운 곡선의 미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웃는다.


은륜(銀輪). 자전거를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라즈니시도 '마음으로 가는 길'에서 "바퀴는 움직이지만, 반복을 계속할 따름이다"고 했다. 자전거바퀴도 반복을 계속해야만 비로소 자전거로서의 기능에 족하다. 그 반복 속에는 원운동을 하며 짓는 바퀴의 아름다운 곡선이 있어 더 아름답다. 천상병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은 시 '오월의 신록'에서 눈이 나빠진 그에게 아버지가 해준 말을 싯귀에 담았다. "…책만 열심히 읽으니/그런 꼴이 되지 않나?/ 내일부터 해 뜰 무렵에 일어나서/ 교외로 나가서 자전거로/ 산야의 청록을/ 열심히 보아라…"라는 구절이다. 자애스러운 아비의 정을 은근히 자전거에 실어줘 눈길을 끄는 대목이질 않는가. 자전거와 산야의 청록이 곡선으로 어울리는 요즘처럼.

 영남일보 [김채한 기자]가 집필 게재한<2009.6.19字 영남일보> 곡선미감을 옮겨 왔슴 /  2009.6.26 [ 하기]


글쓴이=/ 김채한 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사진=/ 포토피디 서태영 newspd@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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