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속에서
ㅡ 박진형ㅡ
길은 헐렁한 자루 같다
세상 어딘가에 한쪽 끝이 묶여 있다
가로수가 촘촘히 늘어선 길 옆 초가집은
저녁밥 짓는 실연기를 피워 올리고
하늘은 공손하게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길 속에 놓여 있고
새들은 날기를 그만 두었다
일렬로 늘어 선 가로수가
아이 뒤를 줄레줄레 따라 가고 있다
주둥이가 묶인 자루 속에는
먼저 간 새와 뒤에 올 아이들이
천진하게 얼굴을 맞대고 있다.
[송재학의 시와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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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
박진형의 길은 화가 박수근의 길이다. 또는 우리가 한 번쯤 걸어갔던 길이다. 박수근의 길일 때 그 길은
박수근의 마티에르가 그렇듯 몇겹 중첩된 길이거나 길 속의 길이다.박수근의 길일 때 맨 아래쪽 두터운
길은 잊어버리고 픈,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길이다. 상처란 결국 점묘처럼 희끗희끗해지는 법이다.
가장 위쪽의 길은 잊혀지지 않는 길일 것이다.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박수근이 그린 어떤 그림처럼 자꾸
덧칠해서 희망과 절망을 중첩시키는 방법이다. 그가 그 길은 우리가 한 번 걸어갔던 길이라고 독백처럼
말할 때 길은 마침내 헐렁한 자루를 가졌다. 어떻게 해서 길이 자루로 바뀌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인이 길 위에서 세상의 그림자들이 겹쳐진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로수와 새와 아이들의 표정
을 가져오기 위해 그것들을 자루로 묶었다. 그래서 자루의 길이 탄생했다.오래전 현대시학에 이 뛰어난
시가 발표되었을 때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시인 송재학
오빠생각
30년만에 강추위가 몰아친 오늘 전국이 꽁꽁 얼어 붙었다. 수도권은 영하15도 내가 있는 이곳은 영하7도 였다.
[크리스 마스] 를 [아이스 마스] 라고 부르고 싶다는 내 친구 불곰의 표현이 맞는것 같다. 참 추운 오늘이었다.
2010.12.25.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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