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의 詩와 함께
안씨의 공부
윤제림
己亥生 안씨 할머니가 이제와서 한글을 깨쳐 보겠다고 검정 고시학원에 딸린 한글반
학생이 된 까닭은 전주 가는 뻐스를 탔는데 진주에 부려지고 싶지 않아서다. 아니,어
느날 저승에 가서도 그럴까 더럭 겁이 나서다.거기선 글자 하나 잘못 읽으면 영판 엉
뚱한 세상으로 간다지 않는가.길 한 번 잘못 들면 한 칠만팔천 리쯤 엇나가서,고쳐 잡
자면 이천삼백 년쯤 걸린다지 않는가.
한글 공부가 쉬이 긑나면, 한자도 조금 익혀 볼 생각이다.그 나라 공문서는 아무래도
한자가 많이 섞여 있을 것 같아서다.
.........................
[ 詩 評 ]
할머니 걱정마세요. 전주에 가려다 진주에 부려지는 일 없으실 거예요. 물론 상주에 가려다 성주에
부려 져서도 안 되겠지요.더구나 저승 가서도 잘못 부려진다면 큰일이지요.그러나 저승길이 멀
고 험하다지만 할머니처럼 삶을 예비하시는 분은 절대 잘못 부려지는 일 없으실 거예요.많이 배
우고 똑똑하다는 젊은이들도 걸핏하면 헷갈리곤 하거든요. " 사랑해 " 라고 보낼 문자 메시지 를
" 사망해 " 라고 잘못 보낸 경우나," 너 지금 심심해 " 라는 문자를 " 너 지금 싱싱해 " 라고 실수를
해서 애인으로 부터 호되게 낭패를 당한 경우가 있었다지요. 초등학생 영어반 조카도 다급하면
곧장 키친과 치킨이 헷갈린다니 이 정도는 일상인가봐요.그러니 할머니 아무 걱정 마세요.己亥
生이면 할머니 올해 일흔일곱.요즘 평균수명이 늘어 한창 아니신가요." 한글반 " 에 가시거든 어
두운 눈 활짝 뜨고 지금껏 못 본 세상 맘껏 꽃피우세요. 한자 꽃도 피우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2011.1.19.매일신문 게재] 이규리 (시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