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 대하여

이규리의 詩와 함께

깊이에 대하여

이하석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인지,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

면 " 왜 거품을 걷어 내느냐 ?" 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하여" 라고 대답

한다. 마음에 없는 말 일수 있다.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는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 준다. 모두 얕다.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치

않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

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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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評]

믹스 커피는 단연 국산이 최고라고 한다. 해외여 그러나 그 커피에도 깊이가 있고, 밑바닥 까지 다

행 갈 때도 너나없이 필수품으로 챙겨들 간다. 하 보여주지 않는 어둠이 있다. 만만하다고 얕볼 수 있

루에도 예닐곱 잔씩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는 게 아니다. 잘못 건드려 엎질렀을 때, 잘 차려입

말했다. 자꾸 마시다 보니 정이 들어 끓지 못하겠 은 양복이 온통 얼룩지는 건 물론 소매 안에 덴 팔뚝

다고, 꼭 애인 같다고, 맞는 말이다. 잠시 휴식할 은 벌겋게 부풀어 오르니. 이렇게 복병은 늘 가까이

때나 무료해서 막간을 채워야 할 때 그 커피만한 사소한 곳에 포진해 있다. 대단치 않은 것에도 빠질

게 있더냐 언제나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애인, 수 있다는 말에 유의하자.

추운 겨울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게 손까지 데워 커피 한 잔을 둔 사유가 참으로 치밀하고 검고 또

주니, 깊다. [2011.1.27.매일신문게재] 이규리 시인

♡ 신 유 - 夢中女 -

덕유산 덕유평전 능선

누구든 겨울엔 덕유산으로 가라. 덕유산에 가서 갑자기 밀려온 그름 속을 뚫고 걷고,

해초처럼 떠다니는 운해를 타고 넘자. 바람 많아 지독한 눈보라 일거든,그 폭풍 같은

눈(雪)들의 잔치도 지켜볼 일. 겨울 덕유산에선 그마저 황홀하다.여기에 눈 부시도록

찬란한 꽃들의 잔치라니.몽글몽글한 눈꽃부터 서리꽃,얼음 꽃,바람꽃까지 만발하다.

그러니 겨울엔 누구든 덕유산을 찾아 서늘한, 그러나 동화처럼 예쁜 그 겨울에 빠져 보자.

내, 나이 e-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