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 하지않고 남겨둔 일
中友會 멤버들
[시가 있는 아침] 앵두
- 고영민(1968~ )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앵두라는 단어는 앵두를 닮았다. 빨갛고 탱탱하고 동글동글한 앵두. ‘빨간 화이바’ 도 앵두를 닮아 생생하고 탱탱하다.
‘빨간 화이바’를 쓰고 그녀가 오니 앵두가 오는 것이고 싱싱한 그녀의 생명이 오는 것이다. 부릉거리는 스쿠터 소리조차
조르는 듯 투정을 부리는 듯 넘치는 애교로 그녀를 바라보는 이의 몸에도 충만감을 불어 넣어준다. 가랑이를 오므리고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운 섹시한 그녀. 인간이 만든 파이버, 인간이 만든 백미러, 이것들이 앵두나
기린의 귀를 닮아 자연의 모습을 흉내 내며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면 괜히 행복해진다. 오늘은 행복
한 날이 될 것이다. 풀 많은 내 마당으로 쒱 달려온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도 될 것이다.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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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하지 않고 남겨둔
하지 않고 남겨둔 일
- 롱펠로(1807~1882) / 김병익 번역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려 해도
아직 하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
완성되지 않은 일이 여전히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침대 옆에, 층계에,
현관에, 문가에
위협으로 기도로
탁발승처럼 기다린다.
기다리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다리며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
어제의 돌보아줌 때문에
나날의 오늘이 더 힘들다.
마침내 그 짐이 우리 힘이
감당하기보다 더 클 때까지
꿈의 무게만큼 무거워 보일 때까지
곳곳에서 우리를 내리누른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틴다,
북방의 전설이 말하는 것처럼
어깨에 하늘을 인
옛날의 난쟁이처럼.
시인이 살았던 1800년대 사람들도 오늘의 우리처럼 바빴나 보다.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다.
마치 거지나 탁발승처럼 위협하고 기도도 하면서 일을 해내라고 조른다. 어제 한 일 때문에
오늘은 편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일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아두라는 것이겠지. 어깨가 무거운 것은 당연한 것. 완벽하게 일을 못했다고 나를 탓
할 것만도 아니다, 일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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