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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아픈 長壽는 축복이 아니다

by 하기* 2013. 5. 29.

 

 

 

 [金大中 칼럼]  아픈 長壽는 축복이 아니다

 

 

입력 : 2013.05.28 03:08   조선일보  오피니언 (2013.5.28. 화요일)

치매부인 동반자살 80대 남편 遺書 '이 길이 우리가 갈 가장 행복한 길'
자기 결정 따라 '존엄'의 길 택해… 주변 황폐화하는 老年 치매 증가
고령화 시대 피할 수 없는 현상… 유언장 등 '인생 出口전략' 필요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지난 13일 경북 청송에서 자살한 80대 노부부의 사연은 적어도 70대 이상 노인들에게는 아픈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치매에 걸린 부인을 태우고 자동차에 탄 채로 저수지에 돌진한 88세 노인의 최후는 고령화로 급진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그분들의 처지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들은 부농(富農)이었다. 흔히 그렇듯이 가난해서, 생계를 잇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자식 3남 2녀가 있었다. 흔히 있는 것처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버림받아서 생을 버린 고독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속된 말로 살 만큼 산 사람이었다. 굳이 자살이란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어도 될 만한 인생이었다. 조금 마음이 괴롭고 조금 몸이 아프고 조금 주위가 산만해도 그러면서 늙어가고 그러면서 인생의 종착역에 가게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것은 자손들에게 험한 꼴 안 보이고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세상에 추한 모습 보이지 않는, '존엄'의 길을 택한 것이다. 살 만큼 산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버리고 비록 80대가 돼도 자기 생(生)에 관한 결정을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줬다.

70대 이상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있다. 인생 마감길에 걸리지 말아야 할 병(病)이 세 가지 있다. 뇌졸중 즉 '풍'이 하나이고 암이 둘이고 치매가 셋이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치매라고 했다. 암과 풍은 본인이 자각할 수 있는 질병이다. 자기 자신이 아프고 고통받는 데 그칠 수 있다. 이에 반해 치매는 본인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인 입장에서는 가장 행복(?)한 것이 치매일 터인데도 치매가 가장 악질로 꼽히는 것은 그것이 그 주변 모두를 황폐화할 개연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란다.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의 박승철 교수는 오래전부터 친구들에게 '유언장 쓰기'를 권유해오고 있다. 그 요지는 '내가 내 의지로 내 생명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는 3개월 정도 치료하다가 자연사하도록 내버려둘 것을 의사, 가족에게 유언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자연사란 인공적 생명 연장 기능을 떼고 생리식염수 등을 서서히 줄여가는 것을 말한다. 그의 '유언'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치매인 경우이다. 치매가 확인되면 "즉시 요양 기관에 보내되 좀 먼 곳으로 보내고 면회 오지 말라"는 것이다. 치매 환자는 어차피 가족이나 친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도 뇌사와 같은 기준으로 자연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내용의 유서를 만들어 변호사의 공증을 거쳐 의사와 가족이 보유하고 있으면 사후에 법률적·윤리적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청송의 노인이 박 교수의 '유언장'처럼 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부인을 멀리 요양원으로 보낼 수도 없고 혼자 간병할 수 없었다면 그는 부인을 위해 자신을 동반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기력이 다해가는 자신의 88년 인생을 위해 치매 부인을 동반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저러나 부인은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 부질없는 얘기다. 다만 거기에는 동행(同行)이라는 가치가 돋보였다.

출구(出口)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 군사적 개념이고 경제적으로 원용되기도 했던 출구전략은 이제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인생의 바다에 나올 때는 인간의 의지라는 것과 무관했으나 퇴장 때만은 자신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인구는 늘어나고 인간의 수명도 계속 늘어나는데 인류가 소모할 자원은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은 결국 지구적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인간 수명 100세를 내다보는 각종 의학적 관찰이 나오고 있다. 90세 아버지와 60~70세 아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장수는 결코 축복이 아니다. "치매나 식물인간이나 암 등에 시달리면서 이어지는 장수는 절대 미덕이 아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문제는 앞으로 '청송 80대 노부부의 자살' 같은 일이 일상(日常)처럼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며, 늙은이의 자살 또는 동반 자살 따위(?)는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 세월이 조만간 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전문가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현재 추세대로라면 장수가 미덕이 아니라 '노인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구원(救援)이 되고 미덕이 되는' 날이 머지않아 닥칠 것으로 점칠 수 있다. 이제 70~80대 노년층은 자신의 의지가 그나마 작동하고 있을 때 자기 인생의 마감 방식을 결정하는 '유언장'을 만들어 두는, 출구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청송 노부부의 자살 기사에 붙은 댓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나도 자동차 팔지 말고 갖고 있어야겠다."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단순함이 위대하다

                           (중앙일보)입력  2013.6.15. 00:20 

 

                           # 지난 주말 서울 송파구의 한미사진미술관을 찾았다. 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리셉션이 한창이었지만

                        바깥 복도 쪽은 한가하고 조용해서 전시된 사진들을 둘러보기엔 오히려 좋았다.눈길 가는 대로 전시된 사진들에 눈을

                        마주치다 전시실 입구 쪽에 걸린 글 한 줄에 눈길이 멈췄다. “큰일났다. 폰카에 빠졌다”라는 글귀였다. 그랬다. 거기서

                        본 사진들이 죄다 사진거장 강운구가 폰카(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로만 작업한 사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뜻

                        “저건 나도 늘 저렇게 찍는데…” 하는, 왠지 모를 만만함이 나도 모르게 속에서 툭하고 배어 나왔다. 물론 아무리 폰카

                        로 찍은 사진이라 해도 대가의 앵글은 다르지 않겠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사진들은 분명 나의

                        스마트폰에도 적잖게 저장된 그런 폰카 사진들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렇게 거장은 스스로 찬사의 대상에서 스스럼없

                        는 친구로 내려앉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사진작가 강운구의 오랜 친구인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언젠가 『내 친구 강운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

                         잡한 장비로 주체를 못하는 그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나의 노력은, 내게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역할이었

                         다. 코닥인가요 후지인가요, 아사 몇짜리죠? 묻고는 그가 원하는 필름을 까서 재빨리 들이대는 시중의 기쁨까지 터득

                         하고 나서야  아, 강운구의 조수자리야말로 따분함이 아니라 기쁨과 자랑의 자리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하지만 일흔

                         고개를 훌쩍 넘은 사진거장 강운구는 이제 복잡한 장비도 조수도 필요없이 자유롭고 가볍게 폰카 하나로 세상을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은 결코 경망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 이젠 나와 대상 사이에는 기계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주워 담아야만 할 어떤 이삭과 조우했을 때 그냥 그것에 맡기면 된다.  이젠 조리개나 셔터를

                        조절하는 것조차 조작이라는 느낌이 든다.”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지만 정작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우리는 그 단순함을 통해 더욱 자유로워지고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정말이지 복잡한 것은 가짜고 단순한 것이 진

                        짜 아닐까 싶다.

                        # 다시 이기웅이 회고하듯 말한다. “그런 틈틈이 시선이 갈 데 없는 나의 카메라는…그의 시선이 강렬하게 꽂히는 곳,

                        그가 고뇌하거나 뭔가 구상하고 있는 순간의 표정, 힘들어 쉬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덧없이 찍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 강운구는 스스로를 피사체로 놓고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다.이전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이다. 시쳇말로 애들

                        이나 하는 셀카 찍기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거장이 스스럼없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일흔이 넘은 강운구

                        는 거리에서 멈춰 자신의 신발 끝이 보이도록 찍는다. 액자 속 거울에 폰카 찍는 자신이 비치도록 셀카를 찍기도한다.

                        심지어 같은 장소, 같은 장면을 시차를 두고 찍기도 했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을 찍기도 하고,  그림자로 비친 자신을

                        찍기도 했다. 이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여행 중에 혹은 사소한 일상속에서 으레 했을 법한 폰카와 셀카 찍기 아닌가.

                        이것을 강운구는 전시회에 내걸었다. 이전의 그라면 이렇게 말했을 법하다. “정말이지 겁도 없이!”

                          # 사진거장 강운구는 이렇게 고백하듯 말했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히말라야의 여명을 찍을 때, 수동 카메라로는

                        아무리 해도 제대로 찍히지 않던 것이 폰카로는 그대로 셔터만 누르니 찍히더라”는 것이다.  기계 만능, 기술 만세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오히려 디지털이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풍

                        광 앞에서 또 하나의 경배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아울러 세상에는 자유라는 앵글과 단순함이라는 셔터보다 더 위대

                        한 보는 법은 없다는 것을 일흔이 훌쩍 넘은 사진거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웅변하고 있었다.그렇다! 복잡하고 요란

                        한 것이 힘을 갖던 시대는 지났다. 단순하고 조용한 것이 힘을 갖는다. 바야흐로 그 단순함이 지고(至高)하고 위대한

                        것 아니겠나!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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