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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한혜경의 100세 시대] 은퇴남들의 " 나 홀로 식사 "

by 하기* 2013. 5. 18.

 

 

 

[한혜경의 100세 시대] 은퇴남들의 " 나 홀로 식사 "

 

 

 

61세의 A 씨는 퇴직 후 생활을 “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황당하다”고 표현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 혼자 밥 먹는 일”이라고 했다.

A 씨는 오전 7시쯤 일어나 운동을하고,10시쯤 아내와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러고 나면 여기저기서 아내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고 아내는 외출 준비를 시작한다.   결국 점심은 거의 매일,  저녁은 자주 혼자 먹게 된다는 것이다.

A 씨는  생전 들어가지 않던 부엌에들어가 주섬주섬 먹을것을 챙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했다.냉장고를 들여다보는 것도 귀찮아 한두 가지 반찬으로 때우고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심심해서 거실에 있는 TV를 켜놓고 밥을 먹는다.   하지만 낮에는  ‘나이 많은 어르신도 보험에 들 수 있다’는  광고가 너무 많이 나와 짜증을 내며TV
를 끈다고 했다.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A 씨가 사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는 식당마다 초로의 남자들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데, 그 자리에선 아내들에 대한 성토가 요란하다고 했다. “ 다들 이렇게 큰소리쳐요. ‘요즘
여자들 너무 심하다. 자식들이오면 고기도 구워주고 별걸 다 해주면서 남편은 이렇게 구박할 수가 있나?봉사

활동 한답시고 나돌아 다니는데, 봉사는 밖에서만 하나?’ 물론 집에 가면 다시 조용해지지만요.”

그런데 여느 날처럼 혼자 밥을 먹던  A 씨는 TV에서  혼자 식사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 특히 칸막이 친 식당

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보곤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는 심지어 화장실에서 혼자 밥 먹는 대학생도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A 씨는 그런 장면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러다 혹시 나중에 혼자 남는다면 어떻게

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고심 끝에 집근처 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아버지 요리교실’에 등록하는 결단을 내렸다. 다행히 비슷한 연

령대의 남자들이 여럿 있었다.12주에 걸쳐 된장찌개 끓이는 법부터 전골요리 만드는 법까지 배웠다.  요리교

실 다닌다는 얘기에 코웃음을 치던 아내는 어느 날 저녁 A 씨가 차려 놓은 밥상을 보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재밌는 건 그날부터 A 씨의 태도가 당당해지다 못해 아내의 표현대로 ‘도도해졌다’ 는 점이다.  A 씨는 말했다

“전에는 ‘오늘은 언제 들어오시려나?’ 하면서 마누라 눈치를 보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시장 보고,서점에 가서

요리책 구경하고, 음식 만드는 데 신경 쓰느라 마누라가 나가든 들어오든 관심도 없어요. 오히려 그쪽에서 내 눈치를 봅디다.”

A 씨는 두 가지를 새로시작했다.손이 많이 가는 한식 외에 간편하면서도 그럴듯해 보이는
서양음식 만들기에 도전한 게 한 가지, 또 하나는 TV 켜놓고 쓸쓸하게 밥 먹는 친구들을 불러 같이 밥 먹는 ‘명랑한 밥상모임’ 을  만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늘고 있다.이는1인 가구의 증가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에 따르면 1인 가구는 1990년 102만 가구에서 2011년 436만 가구로 4.3배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수준

의 증가세를 보였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혼자사는 어르신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남자 어르신이
늘어나,2010년 통

계청 자료에 의하면 60대 1인 거주자의  32.2%, 70대의 18.2%,  80세 이상의 13.7%가  남자인 것으로 나타

다.    또 지난해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의 조사 결과 1인 가구 남자 어르신의 28.9%가  혼자 사는 데 따르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가사 등 일상생활 문제 처리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일본의 노인인구 비율이10% 정도로 현재의 우리나라 수준보다 약간 낮았던1980년대 초반, 일본작가 사하시

게이조가 쓴 ‘할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책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집안일은 여자만 하는 것으

알고 83년을 살아온 할아버지가 아내의 죽음 이후  집안일을 배우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이 책은 노년의 남자들에게 부엌일을 통한 홀로서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다.

사실 부엌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라도 중요한 곳이다.‘할아버지의 부엌’ 속 할아버지처럼 아내가 죽은 뒤 홀로 돼서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남자
들도 일생 부엌과 친해야 하고 늦어도 중년기가 되면 요리

실력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식생활의 질도 높이고 인생도  즐거워지지 않

겠는가.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도 필요하다는 점을 더불어 강조하고싶다.  농촌 어르신의
삶이 도시 어르신보다 풍성

해 보이는 이유는 식탁을 나누기 때문이다.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소셜다이닝(Social Dining)’의 개념도 함께

함께하는 밥상을 매개로 친교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하고만 밥 먹는 시대는 지나갔다. 100세 시대에는 이웃끼리, 세대를 뛰어넘어, 밥을 같이 먹으면서 세상

얘기를 나누는 따뜻한 모임이 필요하다. 식탁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복지사회’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ㅡ 2013.5.16.동아일보 A32면 오피니언 게재 발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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