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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정선 가는 길

by 하기* 2013. 5. 18.

 

 

 

시인은 어디에서 詩을 만났나

 


 

 

 흐린 봄날 정선 간다
 처음 길이어서 길이 어둡다

 노룻재 넛재 싸릿재 쇄재 넘으며
 굽이굽이 막힐 듯 막힐 것 같은
 길
 끝에
 길이 나와서 또 길을 땡긴다

 내 마음 속으로 가는가

 뒤돌아보면 검게 닫히는 산, 첩, 첩

 비가 올라나 눈이 오겠다.

                                      ㅡ 문인수의 시 <정선 가는 길> 전문 ㅡ

 

 

 

시인 문인수(68)는 강원 정선을 자주 찾는다.  ‘  그 어느 한쪽으로도 시계가 트인 곳이 없는, 험한 산세로 빙빙 둘러쳐진,  산간오지만이 갖는 그런 위압스런 사위(四圍)’라고 정선을 칭하는 시인. 그런 시상(詩想)은 그대로 한편의 시가 됐다.

계간 시인세계는 최근 펴낸 여름호에 ‘시가 된 그곳’이라는 기획특집을 실었다.   시인에게 각별하게 다가온 장소, 그 속에서 피어낸 시를 소개했다. 문인수 곽효환 황학주 유홍준 나희덕을 비롯한 시인 12명이 ‘시를 만난 공간’을 전한다.

시인은 한 장소에서 현재와 동시에 과거를 읽기도 한다. 곽효환(46)은 경남 통영에서 시인 백석과 그가 짝사랑했던 박경련을 떠올린다. 백석은 박경련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크게 낙심한다. 박경련을 ‘한 여인’으로, 백석을 ‘자작나무 닮은 사내’ 로 옮긴  곽효환의 시 ‘통영’ 의 일부는 이렇다. ‘비가 젖은 포구가 보이는 / 수루 앞 계단에 앉아 /한 여인이 그리워/낡은 항구를 세 번 다녀간/자작나무 닮은 사내를 떠올린다…그가 끝내 만나지 못한 천희를/오늘 내가 그리워하며…....지워지지 않는 젖은 얼굴을 닦는다….’

이영광(48)은 미당 서정주가 스물세 살 때인 1937년 몇 달 머물렀던  제주 남단 지귀도를 찾아가 청년 미당이 보았던 절망을 읽었고, 시 ‘  공중의 인터뷰’를 쓴다. 다음은 시의 일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지귀에 갔네/절망도 벌떡 일어나 걸어야 할 것 같은 적막 속으로 //이글거리는 갈대숲 너머는/동지나해구나 태평양이구나, ‘한바다의 정신병’이구나.’

나희덕(47)은 전남 순천시 와온해변을 꼽았다. 와온의 일몰에서 “ 뜨거운 성애 장면을 보았다”고 하는 시인은 시 ‘와온에서’를 얻었다.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넣을 때, /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와온 사람들아,/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동아일보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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