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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정부에만 기댈 문젠가

by 하기* 2014. 5. 10.

 

 

 

 

[ 정부에만 기댈 문젠가 ]

                                      2014.5.9. 동아일보 A29면  [오피니언]  @뉴스룸   ㅡ글쓴이 [허진석] 채널A 차장.ㅡ

 

 

먼저  고백하건대  세월호 참사 후에도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는 잠깐 마트에 들렀다.약속 시간에 늦었다며 과속도 했다. 참사를 지켜본 머리는 안전 문화를 떠올렸지만 몸은 여전히 ‘ 하던 대로 ’ 다.

규정 준수에 관한 대한민국의 수준을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규정대로 하자고 입 밖에 꺼냈다가는 순진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사업을 깨끗하게 하겠다며 규정대로만 했다가는 주변의 따돌림으로 생존까지 위협받곤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규정 미준수가 낳은 세월호 ‘사건’ 의 공범이다. 화물 적재 규정 등을 지키지 않아 세월호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기울었고,구조 과정에선 선장과 승무원이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 규정을 저버렸다.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뜻밖의 일인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건’ 임이 명백하다. 침몰 현장에 간 해경과 대책본부를 꾸린 공무원들도 불완전한 매뉴얼과 미숙한 대처로 그 뒤를 이었다.

우리가 고귀한 생명을 잃은 것은 있던 규정마저 지키지 않아서다. 제2의 세월호 사건을 막기 위해 정부에 모든 책임을 지
우는 건 쉬운 일이다. 그렇게만 해서 가능하다면 천번 만번 정부를 비판하겠다.  정부의 책임이 무거운 건

분명하지만, 결국은 ‘우리’ 문제다.

규정 준수를 업신여기는 문화는 휴전 상태에서 실시하는 민방위 훈련까지 ‘시늉’ 으로 만든 상태다.사이렌이 울리

면 방공호로 대피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정작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그 훈련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방공호를 찾아가는 길과 통신 두절 상황에서 내 가족과 만날 장소는 머리가 아닌 내 몸이 알아야 정상이다.  지진 대피 훈련

이나   매년 맞는 태풍과 홍수에 대처하는 방법도 흉내만 낸다.정부가 만든 많은 매뉴얼에는   ‘신속하게 대피한다’ 

‘ 안전하게 높은 곳으로 몸을 피한다’ 와  같은 있으나 마나 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몸에 배도록 하는 훈련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아 온 폐단 때문일 게다.

대통령은 적폐를 도려내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런 다짐은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순진하고 위험한판단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몸은 여전히 관행을 따르는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규정준수에 깐깐한 우리 이웃을 폄하하지 않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유치원 통학차량에 아이를
태워 보내는 어머니가 ‘ 왜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 무안하지 않아야 하고,택시운전사에게 ‘ '안전속도를 지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은 많이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안전벨트 문화를 확산시킨 걸 보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안전 문화는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귀찮고,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비용까지 더 드는 엄청난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물으며 모두가 다짐해야 하는 일이다. ‘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는 마음은 이렇게 승화시켜야 옳다. 남겨진 자의 의무다.

                                                                                      허진석 채널A 차장 jameshuh@donga.com

 

 

 

                                                                        2014.5.9.  하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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