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취재를 나선 길에서 마주친 훌륭한 풍경에
카메라를 겨누는 순간 ‘사람’이 아쉬워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풍경사진을 찍는 이들은 대부분 ‘사람이 없는 사진’을 더 선호하더군요.하지만 여행 기사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건 ‘풍경’ 이 아니라 ‘여행’인 것이니, 사람이 사진 안으로 들어오는 게 자연스러울 때가 더
많습니다. 사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그대로 자 ‘(尺)’의 역할을 해서, 풍경의 규모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카메라의 앵글에 넣는다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뒷모습이나 먼 거리에서 새끼 손톱만 한 크기로 찍는 경우를 빼고는 그 때마다 동의를 얻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보도가 전제된 사진이니 만큼 초상권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일언반구 없이 카메라를 휘두른다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장
주의해야 하고 어떤 경우라도 승낙을 받아야 할 것이 ‘정다운 포즈의 중년남녀’라는 건,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제주의 한 특급호텔에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2년 전쯤 중국의 한 방송사 기자들이 제주도 소개 프로
그램을 제작하면서 이 호텔을 멀찌감치서 화면에 담았답니다. 물론 촬영은 호텔 직원들이 미리 손님들에게 TV 촬영 사실을 알린 후에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그날 자정쯤 웬 중년 남자가 호텔 프런트에 들이닥쳐 ‘아무래도 방송 카메라에 찍힌 것 같은데 지워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답니다. 그 호텔 투숙객도 아니었는데, 호텔 구경을 왔을 때 웬 방송 카메라가 자기를 찍는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다 찾아온 길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와 함께 찍힌’ 게 문제가 되는 건지, 아니면 빚을 지고 도망 중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호텔 홍보담당자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중국 취재진을 깨워 녹화 테이프를 일일이 모니터해야만 했답니다.
카메라를 들이댔다가는 자칫 한 사발의 욕을 먹는 곳이 시장입니다. 시골 오일장의 정겨운 풍경도 웬만해서는 카메라를 겨누기가 쉽잖습니다.‘물건’들만 찍고 있는데도, 상인들로부터 타박을 듣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그런데 1주일 전쯤 취재차 다녀온 터키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서남부 도시 이스파르타의 버스터미널 상가 주변에서 한 상인이 손짓으로 ‘자신을 찍어달라’며 모델을 자청했습니다. 안탈리아 항구에서는 일부러 카메라 앞까지 와서 전문 모델 뺨치는 포즈를 취해준 유쾌한 독일인 부부 관광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구시가지에서 웨딩촬영 중이던 터키 신혼 부부는 따로 ‘포토타임(?)’을 내주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관광지의 들뜬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그들에게는 외국인인 기자의 카메라에 경계심을 푼 탓도 있겠지만,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이들을 사진에 담는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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