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써레
- 조선일보 입력 : 2016.06.06 03:00
써레
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낸다
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었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게 더 많지 않았겠나
이랴 자라! 막써레질로 그래도 이골이 났었겠지
창틀에 뒤엉킨 박 넝쿨들 따로따로 떼어 뒤틀린 서까래에 매어두고
나도 이 빠진 한뎃잠이나 더 자야겠다
―이병초(1963~ )
써레질하는 모습을 보기가 귀해졌지만 예전에는 모내는 때만 되면 무논에서 소가 멍에를 메고 써레를 끄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물론 그 무논에는 고삐를 당겨 '이랴 이랴' 소를 몰고, '워워' 소리를 내 소를 세우던 아버지도 계셨다.
시인은 여름 한철을 과수원에서 보낸다. 달큼하게 잘 익은 복숭아를 얻어먹고, 대
들어 올려 자라게 해주거나 아궁이의 재를 퍼 잿간에 날라다 주면서 큰 걱정이나 개의할 일 없이
지낸다. 그러다 우연히 써레에 눈길이 간다. 써레는 논바닥을 고르느라 이제 써레날이 빠져 있다.
논과 밭에서 평생을 살아오느라 몸이 늙고, 또 탈이 나 병을 앓게 된 농부처럼 말이다.
몸을 써 온 그 써레를 시인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본다.
ㅡ문태준ㅡ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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