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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시가 있는 아침] 두개의 우산

by 하기* 2016. 6. 21.

 

 

 

 

             두 개의 우산
                                                        - 고이케 마사요(1959~ )


 

              큰 우산과 작은 우산 두 개가
              주인을 기다리며
              나란히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작은 우산을 가진 아이가
              커서
              큰 우산은 가지겠지만
              작은 우산이
              커서
              큰 우산이 되지는 않는다

              나중에는 사람에게서 방치되어 가는
              물건의 슬픔
              이윽고 물건에서 벗어나는
              사람의 슬픔
              (…)



                   인간과 사물은 각기 다른 길을 가지만 인간은 사물에 의미를 각인한다.

                   기억의 어떤 순간마다 어떤 사물이 있다. 때로 사물보다 사람이 먼저 세상을 뜬다.

                   사람이 가고 남은 사물에서, 남은 사람들이 간 사람을 추억한다.

                  “물건에서 벗어나는/ 사람의 슬픔”이 그 물건에 기록돼 있다. 그리하여 사물이

                   성장하는 것은 기억의 축적에 의해서다. 사람들이 사물에 기억을 기록하기를 멈출 때

                  “방치되어 가는/ 물건의 슬픔”이 생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ㅡ오피니언 [시가 있는 아침] 2016.6.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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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 이홍섭(1965∼ )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 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터미널이 ‘여행’의 출발선이라면 좋겠다. 나를 더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좋은 곳. 이런 터미널만 알고 있다면 당신은 환한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알게 된다. 피곤하고 어두운 터미널과 쓸쓸하고 외로운 터미널 등을 배우게 된다. 이홍섭 시인의 시에도 또 다른 인생의 터미널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어린 아버지의 터미널’이다.  


시인의 고향은 강원도에 있다. 어린 시인은 가끔 아버지를 따라 타지에 나왔는데, 돌아갈 때는 버스를 놓칠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기댈 곳은 아버지뿐인데, 아버지는 한참 자리를 비우곤 했다. 아버지가 안 오면 어쩌지, 버스가 떠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어린 시인은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다 자란 시인은 또다시 터미널에 오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따라 왔는데, 이제는 아들이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버스를 타기 전에 아들은 커피도 마셔야 했고 담배도 피워야 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버스 앞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마치 버스와 아버지를 놓칠까봐 자리를 지키던 어린 자신처럼, 늙은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들이 안 오면 어쩌지, 버스를 놓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힘없는 아버지는 맘을 졸였을 것이다.

자라 보니, 아버지는 완벽한 사람도 멋진 사람도 아니었다. 잘생기지도, 강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았다. 대단한 아버지를 잃어가면서 우리는 소중한 아버지를 알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식에게 나이와 힘을 나누어 주느라 다시 어려졌는가 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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