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 136 ]

대구 지하철 3호선이 팔달교 를 지나고 있다.

[ 여름 이후 ]

남아 있는 생이 무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뱉어내는 말보다 주워 삼키는 말들이 많아졌다

삶이 낡았다는 생각이 들자 내 몸에 새겨진 흉터가

몇 개인지 세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반성할 기억의 목록이었다

뼈에 든 바람이 웅웅 거리는 소리가 두려웠고

계절이 몇 차례 지나도록 아직 이겨내지 못했다

사소한 서러움 같은 것이 자꾸 눈에 밟히지만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옷했다

바싹 여윈

등뼈가 아름다웠던 사랑이 떠난

여름 이후

ㅡ 이종형 ( 19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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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마르는 냄새가 시골의 호젓한 길가에는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부르지 않는어

린 날의 이름 같습니다. 건초 향기 속에는 긴 지나간 이야기가 깔려 있습니다. 숲이

시들면 그 안에 가려졌던 것들이 드러납니다.지난여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던물

건도 드러납니다. 숨겼다가 그만 잊었던 것도 있습니다.이제 소용없는 것들이 되어

습니다. 삶으로 치면 숨은" 흉터" 들입니다.나뭇잎 지고 모든 식물들도 입을 다무는

가을 저녁이면 모두 후회와 반성을 넘어 "용서받고 싶은 일들" 에 대해 떠올려봐야

합니다. 알면서도 여전히 용서받을 일을 저지르면서 살고 싶다면 이제 그의 삶에는

"아름다움"이란 것은 없는 겁니다."바싹 여윈 등뼈가 아름다웠던 사랑"을 떠나보낸

일생이었다면 그의"반성" "목록"은 차라리 아름다운"노을빛"일 겁니다.더 잘해 주

지 못한 것도 "가책"인 삶이, 지난 "여름"을 뒤돌아봅니다.

ㅡ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2020.10.20. ( 월 ) 오피니언 게재 中 에서

2020.10.20. 편집 : 하기

내, 나이 e-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