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31]
[풀에게]
시멘트 계단 틈새에
풀 한 포기 자라고 있다.
영양실조의 작은 풀대엔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맺혀 살랑거린다
비좁은 어둠 속으로 간신히 뿌리를 뻗어
연약한 몸 지탱하고 세우는데
가끔 무심한 구두 끝이 밟고 지날 때마다 직전까지 밀어
풀대는 한 번씩 소스라쳐 몸져눕는다
발소리는 왔다가 황급히 사라지는데
시멘트 바닥을 짚고서 일어서면서 그 뒷모습을 본다
그리 짧지 않은 하루해가 저물면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별빛을 받아 숨결을 고르고
때로는 촉촉이 묻어오는 이슬에 몸을 싣는다
그 생애가 길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말없이 살랑거린다.
ㅡ 문효치 (1943 ~ )
☎ 아침저녁으로 살에 닿는 기운이 바뀌었습니다. 과연 어김없습니다. 고난이라
고 말할 정도의 변화무쌍한 기후 ( 무절제의 에너지 문명이 야기한 지구의 몸살
이라고 합니다)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 직전까지 밀어붙이다가도 때가 돼
면 꺾기는 이치가 어그러진 적은 없으니 먼 길 오신 '가을' 에게 투정 섞어 인사
합니다. " 왜 이제야 오십니까! " 목숨 맺어 사는 것이 인간만은 아닙니다. 무릎
구부려야 보이는 여뀌나 씀바귀나 질경이들. 바닥에 붙어사는 식물들이 열매 맺
어 머리에 이고 있는 것 보면 그냥 그대로 우리 할머니 같습니다. 혼신으로 순응
한 삶. 온갖 핍박에도 가난에도 그대로 순응한 생명.
ㅡ 정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2020.9.14. 월 오피니언 게재 中 에서
2929.9.15. 촬영 :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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