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사는 날에
황간 반야사 문수암 전경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30 ]
[산에 사는 날에]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 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 판 한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 일이다.
ㅡ 조오현 (1932~2018)
☎ 이제는 여기 없는 분! 아주 이따금 계곡물 곁에서 뵙게 되면 말씀과 눈빛이
쌉싸름하고도 아이 같던 분, 생각나 책장을 넘깁니다 (그래서 책이 좋지요!).
'젖비듬히(뒤로 자빠질 듯 비스듬하다)' 선 등걸을 짚어 보는 스님을 떠올려 봅니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등걸'의 말이 무엇인지 스님의 귀는 이미 그 사물에 다가가
있는 것이지요. '산에 사는' 분이었지만 때 묻고 병든 세상을 산으로 끌어들여 빨아내고
싶었던 분이 아니었는지 회상합니다. 돌림병이 어리석고 음습한 속내를 타고 급격히
전파되고 병들고 그 악스러운 말들의 굿판이 창궐합니다. 쉽게 그칠 기미마저 없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욕망에 눈먼 인간의 말이 아니라 저 계곡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의 언어입니다. 지금 우리의 화두, '사회적 거리 두기 - - -'. 문득 질문이 옵니다.
많은 문제가 '밀착'에서 온 것은 아니었는지! '너와 나' 사이에 '산'을 하나 두는 상상을
해봅니다. ㅡ 정석남 시인 - 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2020.9.7. 월 오피니언 게재 中 에서 옮겨 타이핑
2020.9.8. 편집 : 하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