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도 없이 삼월
2025.03.23. 경부선 원동역 뒷山 에서
[ 아침의 문장 ] ㅡ 2025.3.25. 중안일보 오피니언 28면中
내가 느끼는 " 좋은 사람 "은 사회적 지위나 재정적 상태와는 상관없이
별로 튀지 않고, 마음이 넓고, 정답고, 남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삶을 다하고 죽었을 때 신문에 기사가 나고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뉴스로 알게 되는 " 유명한 "사람보다, 누군가 그가 없어짐을 슬
퍼해 주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 에세이스트 장영희(1952~2009) 전 서강대 교수의 산문에서 고른
문장들을 실은 [ 삶은 작은 것들로 ] 에서 옮겨 적었음.
photo by 건셀(산사랑)
[봄도 없이 삼월]
ㅡ 김병호 (1971 ~ )
사람이 사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봄도 없이 그 앞을 지니던
무릎보다 낮은 반지하 수백의 연분홍 맨발들도
쪽방에 핀, 손바닥만 한 한 번씩 발을 넣어보겠습니다
보행기 신발과
앞코 해진 운동화 얼굴 없는 걸음들이 지나칠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햇살 미끄러지는
봄빛을 모아 출렁이는 아이의 잠을 덮겠습니다
두 켤레 꽃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봄이 혼자만 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햇살에 힘줄이 돋습니다.
end.
..................
☎ 둘러보니 벌서 서울에도 매화꽃 만발했습니다만 가만 서서
웃으며 바라 볼 여유는 없습니다. 꽃 얘기, 봄소식 맘 놓고 나누
지도 못하는 삼월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올해 처럼 실감하기도 처음입니다.
ㅡ <중략> ㅡ
매해 봄이와도 봄을 실감하기 어려운, 어려운 삶의 그 골목 사람들.
그 "두 켤레꽃"을 발견하고는 "연분홍 맨발"의 마음이 되어 "꽃"에
"발을 넣어" 보고는 잊었던 미소를 띱니다. 가던 걸음도 조금
더뎌질 겁니다. 사뿐한 잠깐의 봄 신발입니다.
꼭 오고야 말 봄의 징표이고 희망의 악보입니다. 그 창 아래에
사람이 사는지 몰랐던 것 참으로 미안합니다!
ㅡ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2020.3.23. 조선일보 게재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중에서
*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다"
2025.03.17. 포항 월포 닻전망대 에서
정 끝벌의 시 읽기一笑一老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여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ㅡ조오현(1932~) [적멸을 위하여] 문학사상사, 2012)
☎
왜 사느냐고 묻거든, 그냥 웃겠단다. 못다 한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아니
살아 있으니 산다고도 한다. 시 속의 '늙은 중님'께서는 감자 한 알 받기 위해
사신단다. 예닐곱 아이가 일흔둘의 '늙은 중님'을 불러 감자 한 알을 쥐여 주
고는 꾸벅 절한다. 제 먹을 거 움켜쥐기에 다급할 예닐곱 나이에, 빈집 태반인
산마을이니 제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지나가는 탁발승에게 감자 한 알을 건
네는 아이. 그 예닐곱 아이가 보시와 공덕을, 자비와 측은지심을, 인연과 업을
알았을 것인가. 아이는 그 자체로 보살이고 부처다.
그러니 '늙은 중님' 에게는 감자 한 알의 '한 소식'이었을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랬거니, 그런 '한 소식' 앞에서 무슨 말을 앞세울 것인가,
잃을 수밖에. 감자 한 알의'한 소식'을 한 번 더 받기 위해 일흔둘을 넘기고도
오늘도 무작정 걸음이란다?
-정끝별시인. 이화여대 교수
2025.03.23.통도사 홍매 를 담다.
2025. 03.27.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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