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 타고 담았다/숲&풍경&바다

11월 심화학습ㅡ英陵<세송대왕/소헌왕후 합장릉>답사ㅡ

by 하기 2 2007. 11. 30.

 

 

11월 심화학습 / 英陵(세종대왕/소헌왕후 합장릉)

 

     일   시 : 2007.11.29.07:00~13:00

         장   소 :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영릉

참가자 : 숲 생태 해설가 40명

 

...........................

 

 

세종 대왕 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능이다.

대왕은  우리 역사상 추앙을 받는 가장 위대한 성군 <聖君>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혼천의,해시계 등 과학 기구를 발명하

고  제작 하였으며,아악을 정립하고 북방의 야인을 정벌하고 4군

과  6  진을 개설하여 우리나라의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장 하였으며  대마도(쓰시마)를 정벌후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세종 대왕은  조선조 제4대 왕으로 1418년 왕위에 올라 1450년 54세로 승화하실 때까지 3 2년간

 재위 하였다. 1397년 조선조 제3대 임금인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원경 왕후

 민씨이며,비<妃>는 심온의 딸 소헌왕후이다.1412년 충녕대군에 봉군 되었다가 1418년 왕 세자

 에 책봉되고 이듬해 8월에 태종의양위로 즉위하니 나이 22세였다.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

 고 왕위에 오르게 된것은 여러 왕자 중에서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재

능이 능통 하였으므로 부왕의 뜻을 대신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영릉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해시계,측우기,혼천의 등 과학기구를 복원해 두었으며 세종전에는

대왕의 업적과 관련된 여러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민족문화 창조의 기틀을 삼고자 1975년 영릉 보수 정화 사업을 추진하여 세종전<유물 전시관>을

새로 짓고 경역을 성스러이 정화하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음악은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속악<俗樂>이나 당악,또는 송제 아악을

따랐기 때문에 서로 혼합되어 무질서한 형태에 있었다.세종대왕때의 음악 정리 사업은

아악의 부흥과 향악의 창작으로 크게 나눌수있다.편경과 편종을 제작하는등 각종 악기

를 새로 만들었으며 악보,악곡등을 종합 정리하고 아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목 해 시계

 

 

 

 

 

 천체 측정 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어 천체를 관측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만원권 지폐 뒷면에 혼천의에 사진이 자랑스럽게  도안 되어 있다.

 

 

 능역 입구에 마련되어 있는 재실

 

 

 

 

 

 

 

 

 

 

 능역을 표시한 홍살문이 정자각 앞에 서 있다.

 

 

 

 

 정자각 동편에 능 비를 세웠다.

 

 

능 밑에는 정자각을 세워서 제사를 지낼때에는 이  정자각에서 지내고 능 봉상

까지 올라가지 못하게 하였다. 정자각 앞에는 수복방을 지어 능을 지키게 했다.

 

 

 

 

영릉<英陵>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능의 하나이다.

합장릉이기 때문에 혼유석이 두좌가있고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돌렸으며

동지주에 12지를 문자로 새겨 넣었다.

 

 

 석양, 석호, 석마, 문인석, 무인석 을 배치하였고, 능 뒤에는 나즈막한 능담을 둘렀다.

 

 

혼유석 밑받침 돌은 네개이며,장명등은 팔각으로 되어있다.

 

 

 

 

 

 

 

 

조선 왕조의 능은 능 밑이 습지가 되어야 하는데 이곳도 습지로서 오리나무가 운치있게 숲을

이루고 있고,능산에는 소나무 노송들이 우거져 있다.  영릉은 사적 제 195호로 지정 되어있다.

 

 

숲 해설가 40명중 절반은 벌써 아랫마을로 자리를 옮겨가며,우리를 빨리 오라고 했지요?

점심 시간입니다...하며.      ㅡ 그래도 여기 모인 분들은 추억을 멋지게 만들었습니다 ㅡ

 

 

 정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담벽뒤에는  커다란 자귀나무 한 그루가 이제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에 제일 좋은 시간은 뭐니뭐니 해도 점심시간 1시간이 였던것 같습니다. 정성드레 마련해 온

점심은 그야 말로 성찬이었는데....밥만 덩그러니 가져오고 반찬을 두고온 카페지기는 그래도 여

 유있고 넉넉하게 반찬 가져온 "솔내 / 동백나무" 두 선생님 덕에 위기를 잘 넘겼던 하루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다음편은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편이 이어 집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