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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參戰 그後

6.25 참전용사 [웨버]대령

by 하기 2 2013. 5. 8.

 

 

[만물상] 조선일보 오피니언 

 

 6.25 참전 용사[웨버]대령

 

조선일보 입력 : 2013.05.08 23:09

미군 열아홉 명이 흩어져 행군한다. 군장 위에 비옷 '판초'를 덮어썼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피는 병사들 얼굴이 잔뜩 지쳐 있다. 그들은 듣도 보도 못한 나라 한국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했다. 그러나 끔찍하게 추운 전장(戰場)은 바닥 모를 수렁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선 열아홉 조각상들은 육십몇 년 전 미국 젊은이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치른 희생과 고난을 말한다.

▶삼각형으로 산개(散開)한 미군 대열 후미에 장교 조각상이 서 있다. M1 소총을 메고서 왼쪽 뒤를 돌아본다. 표정이 어둡지만 강인하다. 왼손은 판초 아래로 나와 있고 오른쪽은 팔이 없다. 팔꿈치부터 잘려 있다. 미 육군 187공수낙하산부대 윌리엄 웨버 대위다. 웨버는 1950년 8월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땅에 발을 디뎠다. 서울을 되찾고 거침없던 북진은 51년 1월 중공군에 가로막혔다.


	[만물상] 6·25 참전용사 웨버 대령 - 일러스트
▶웨버는 중부전선 격전지 원주에 투입됐다. 사흘 밤낮 전투에서 부대원 마흔둘을 잃고 고지와 강을 지켜냈다. 웨버는 북한군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본국으로 후송된 그는 1년 넘게 입원한 끝에 1군 사령부 부관으로 복귀했다. 당시 팔다리를 잃은 장병의 현역 복무는 그를 포함해 둘밖에 없었다. 그는 베트남전에도 자원 참전했고 1980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전역 후 웨버 대령은 한국전이 '잊힌 전쟁'이 되지 않게 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전 기념비 건립위원회에 참여해 1995년 참전비 제막을 감격스럽게 지켜봤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조각가 프랭크 게이로드가 그를 모델로 삼아 조각상을 빚었다. 웨버는 20년 가까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엊그제 한국전 기념비를 참배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났다. 박 대통령은 한쪽 팔이 없는 조각상과 웨버를 번갈아 보며 반갑고 고마워했다 한다.

▶웨버는 한국전 기념비 곁에 미군·카투사 전사자 4만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유리벽' 세우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한국전을 '다섯 문단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 고교 교과서에 한국전을 다룬 대목이 다섯 문단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전우들이 하나둘 고령으로 떠나고 있어서 한국전의 의미를 알리는 일이 더 바쁘다"고 했다. '자유는 거저 얻는 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한국전 기념비 화강암 벽에 새겨진 글이다. 우리는 그 아픈 전쟁의 기억을 얼마나 간직하고 되새기는지 돌아보게 된다.

                                                   2013.5.9. 조선일보[萬物相]수석논설위원 오태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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