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 타고 담았다/heot ttokg & 모습

정년퇴직 그후

by 하기 2 2013. 11. 26.

 

 

 

 

        

  ㅡ  정년퇴직 그후 ㅡ

 

 

 

정년퇴직을 했다. 일할 힘이 아직 남아있으나 제도가 그 힘을 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20,30 과 50,60 이라는 말이유행어된 요즈음, 인생 60 이 이제 막 시작된 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하나  싶다.

 

아나로그 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내가 디지털시대에서 살려면 어떻게 살아하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때도 많았다.나는 내 삶을 위해 근거 없는 이론을 또 하나 기억해 낸다. "가장 좋은 삶이 되려면,일생 동안 직업을 세 번 이상 바꾸어야한다"라는 것이,그것이다. 이 말은 현재의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고 생각 된다. 내 첫 번째 직업은 21세 나이에 군복을 입고 16년 동안 근무, 육군 소령으로 전역한 직업 군인 이였다. 내 두 번째 직업은 국방부장관이 임용한  5급 軍務 行政 事務官으로 22년동안 국방부 예하 제50 보병사단에서 예비군 동원업무 분야을 다룬 5급 사무관이였다. 행정고시를 치루워 최초 5급 사무관에 임용된 일반직 공무원은 승진이 되는데 특채된 분야의 사무관은아무리 업무를 잘 처리해도 4급 서기관이나 3급 이사관으로 승진할 수 없는 규제틀 속에 갇혀버린 공직생활자 였다. 그래서 솔직히 더 아둥봐둥 설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하며 근무를 했는지도 모른다.그래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건 근무중 사단을 대표하는 모범 사무관으로 선발되여 부부가 함께 청와대에도 초청되여 극진한 대우 속에 정부에서 주관하여 시켜주는 해외 산업 여행도 했었고... 솔직히 근무중 늘 긴장하며 선두에 서서 모든 동료와 후배들께는 귀감이 되였던 생활을 했다. 그렇게 총 38년 동안을 나 자신과 국가를 위해 일한 셈이다.지금에 와서 투덜대면서도 그래도 잘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큰 고마움을 전한다. 

 

힘겨웠지만 열심히 국가를 위해 봉직했고, 국가유공자로 선발되어 훈장도 받아 들고, 58세의 나이에 정년퇴직을 하게 된 나는, 집에 가서 쉬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받은 후 나는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하는 신종 직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걸 맞는 세 번째 직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극도로 고심도 했다. 그러나 이내 나는 정말 한없이 행복한 친구라는걸 알게되였다.58세 까지 정말 열심히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건강할 수 있었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제 튼튼한 두다리 더욱 단단하게 유지시킬 여유를 찾고 정신건강을 살 찌워야 겠다. 사랑도 해 봐야겠다. 꼭 그렇게 살찌우는 건강한 사랑을 해보고도 싶은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편안하게 마음 갖고 운동 열심히 하고, 지금껏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고 평생 주 어지는 공무원 연금수급자가 되여있는 나 宋正學이다.  이제 월 이백오십만원이 주어지는  연금수급자가 되였고  매년 조금씩 인상될금액이 합쳐 주어지겠지만  씀씀이 조금만 줄이면 생활이 그렇게 지독스리 궁핍하지는 않을 것이고, 지금처럼 국가에서 실시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 컴퓨터 교육과 취미교육을 습득하고 즐기면서 내 생활에 보태어 쓰면서, 초라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금처럼 조용하고 열심히 조금은 분주하게 살아가면서 세 번째 직업이 주어 진다면 받아 들일것이다. 못다했던 해외 여행도 많이 다닐 것이다.

 

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나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일할 힘이 내 속으로부터 솟아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남에게 고용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되는 것이다. 대문을 지키든, 물건을 나르든,심부름을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60 대를 위한 신종 직업의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이 사회는 더욱 기름질 것이다. 숨겨둔 자기 능력과 욕망에 합당한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비록 60 대지만, 마음은 언제나 20,30대일 수 있지 않겠는가, 60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변하는 세태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20 30 이든 50 60 이든 특정 방식으로 정의되어 그 정의된 틀 속에 갇혀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삶의 활력" 을 찾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건강하자.

 


                                                                                         2005. 6. 30. 정년퇴직    하기, 송   정   학 

 

 

 

팔공산 깔딱고개 마루에 서서... (2010. 초여름)

 

 

       註  :  2013.11.26     naver blog [하기 불로그]에서 옮겨 놓았음

 

.............................................................................................................................

 

 정년퇴직 그 후 10년... 

 

이제  2015년 10월20일을 되었다. 정년 퇴직을 했던 날 부터 꼭  만 10년 4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하고픈 것을 하며 지냈다. 컴 공부를시작,숲해설사.학교지킴이.차량안내 도 했다.

나이 들며 몸에 무딘곳을 알아가며 좋은의사들 만나 진료받으며 그들과 친하게도 지냈다.

 

일본, 중국, 대만,서유럽6국, 동유럽5국, 여행도 했다. 사진기 두대 장만해 사진도 찍는다. 

처음 시작된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지급되는 연금월액수가 이백오십여만원에서 시작되어

매년 조금씩 오르더니 2015년 연금월액이 삼백만이천삼백십원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까지 연금법 개정에 따른 조치로 인상이 동결되었다는 알림을 지난 8월에 알려왔다.어젠

아내와 밥상머리에서 둘이 밥먹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젊었을때 열심히 일했으니까 매월

연금으로 생활하니 좋아?했더니,피식 웃는다.그러며 그것을 남기는 글을 써 두라고 한다.

그것. 그것을 명문화 해 써 두라고 한다. 그래. 그렇게 할 거다. 몇일 후면 써 보강 할거다.

 

이제 평일,휴일/일욜에는 지하철 열차에 자전거도 함께 싣고 가서는 목적지에 내려서 자

전거 종주길을 타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컴]도 만진다. 사진 찍는걸 배우며 동호회

에도 나간다.나에게는 부모님 두분이 고향에서 콩달콩 함께생활하며 계신다.올해 아버

연세가 구십하나.어머님 연세는 팔십아홉이시다.나는 늘 마음을쓰며 생활을 해야한다.

제 나도,이 만큼 나이가 되었다.더 천천히 모든것을 다듬고 싶다.그리고 더 사랑해야지.

나와 인연이 닿고 ,맺어 있는 모든 이들을 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

인데.....♬ ♪   노랫말이 머리를 스친다.                    

                                                                                            

                                                                                            2015.10.20. 하기, 송정학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 놓아버렸다.(2019.1.30) 


   [에필로그]

          정년 퇴직 그 후 14년


          정년퇴직 그 후14년이 지났다.어머님께서는2016년 09.06. 아버님께서는 2018.01.06.영면

          하셨다.어머님 연세 아흔하나(91세).아버님 연세 아흔넷(94세)이 되셨을 때였다.경기도양평

          공원묘지에 가족묘를 조성하였다.어머님 아버님 뵙고 싶을때 서울행 ktx를탄다, 서울역에서

          용산역에 가면 문산에서 양평으로 가는 서울도시철도가 용산역을 지난다,양평행 지하철타고

          양수리 전철역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타면된다.이름있는 날을 가능하면 피해가면 좋을듯하다

          두 분을 잘모셨으니 큰일은 형제들이 힘 합쳐 잘 처리 했다고 생각이 든다.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공직에서 정년퇴직 한후 그래도 지금껏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었다는게 참 행복하였다

          내가 세번째 선택한 직업은 근사하지도않고 멋도없이 활동하며 초등학생과 초등학교를 지키

          는 학교지킴이 였다. 나는 열심히 그학교와 학생들을 지켰고 만족한 생활을 했었는데 타의에

          의해 3년을 넘겨두고 2018.9.30.퇴직을 해버렸다. 그 이유는 장기간 병가는 불가능해서였다


          삼식이 소리 듣지않고, 틈새를 잘 활용해 천천히 하고있는 사진과 여행.내곁을 지켜주는 노트

          북 컴퓨터는 한몸으로 늘 함께 다녔다. 때로는허리가 협착으로 눌려 아파왔고, 어느때는 눈도
          침침하고 어깨도 아팠다.정년퇴직 후 4년간의 숲 해설가생활. 3여년 넘게는 동기가 대표하는
          사업을 전무직을 줄테니 도와 달라기에 열심히 도왔고, 마무리까지 해 주었다,  7년간은 초등
          학교 지킴이 생활을 하였다.7년간의 지킴이 생활에 나는 피곤하고 더러는 망가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 나이쯤에 접어든 모든 내 또래의 운명일거라 거창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그러면
          서 할것은 최선을 다 하면서 학교 지킴이 생활을 했다. 그리고 2018년 8월26일 나는 맨 땅에
          헤딩을 하면서 넘어졌고 2개월의 병원입원 후 끝내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머리에 메스를 대야
          했다.수술을한것이다.하늘이 돌봤는지 그렇게 머리가 깨졌어도 뇌를 감싸고있는 머리 두피만
          손상되여 고여 있던 혈흔을 제거하였고 십일만에 퇴원을 하였다.이상없이 정상을 찾았던거다.
          그리고 하던 모든 일들에서 손을 떼었다.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소리 듣는 자유인이 되었다.

          여행을 더 할것이다.  어딘가에 내가 만나지 못한 행복한 풍경이 존재하는 한, 나는 또 그것을
          만나기 위해 이제는 자유롭게 길을 걷는 길의 미식가로 살아 볼 참이다,  내가 모든것을  이겨 
          냈고 더 건강해야 하는건 부끄러운 생활을하지 않았기 때문일것이다.열심히 일했으니 조금은

          천천히 거닐어도 이제 풀어서 쥐고 못했던 일들을 즐기면될것이다.당당하고 씩씩하기만 하자 


                                                     정년퇴직 후 14년을 회고하면서 ... 2019.02.22. 하기,송정학


             

 

 

 

 

 


윤수일 노래 <유랑자>





    

'걷고 타고 담았다 > heot ttokg & 모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ot ttokg 모습 ( 3 )   (0) 2015.06.27
heot ttokg 모습 ( 2 )   (0) 2015.01.04
heot ttokg 모습 ( 1 )  (0) 2014.07.17
몇해전의 헛똑이  (0) 2013.12.02
Vietnam 전선에서  (0) 2013.11.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