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길]
[철길이 철길인 것은] 하고 나직이 되뇌면 생각의 꼬리가 철길처럼 길게 이어지곤 한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하는 순간 수수께끼라도 떠안은 듯 뒷말을 잇도록 한다.
[ 철 길 ] ㅡ <김정환>
철길이 철길인 것은 인천 방면으로, 그리고 수원 방면으로 떠난다. 만날 수 없음이 아직 플랫포옴에 머문 내 발길 앞에서 당장은, 이리도 끈질기다는 뜻이다.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단한 무쇠덩어리가 이만큼 견뎌오도록 끈질기고, 길고 비는 항상 촉촉히 내려 거무튀튀하다. 철길의 들끓어오름을 적셔주었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무너져내리지 못하고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철길이 철길로 버텨온 것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그 위를 밟고 지나간 사람들의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희망이,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답답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철길이 나서, 사람들이 어디론가 찾아나서기 그 이전의 떠남이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내리 깔려진 버팀목으로, 양편으로 갈라져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남해안까지, 휴전선까지 달려가는 철길은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다시 끼리끼리 갈라져 어느새 철길은 한강교를 지나면서 가슴에 여러 갈래의 채찍 자욱이 된다.
<1982년作>
<조선일보>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편中[89]번째 게재<2008.4.22 화 >
( 1 ) 김정환 (59) 시인은 [철길이 철길인 것은] 을 되뇌며 (철)길과 만남과 희망을 엮어 이렇게 노래한다 만날 수 없음이 이리도 끈질기기 때문이라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직 내 팽개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철길이 철길인 것은]하고 되뇌이면 신촌역, 성북역, 용산역, 서울 역을 오가던 아련한 철길들이 떠오른다.그러니까,철로도 아니고,철도도 아니고, 바로 [철길이 철길 인 것은] 그 길이 인간 안쪽으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 2 )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철길은 두개의 길로 서로 마주칠 수 없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서로 버팅김 으로써 자나감의 속도와 무게를 견뎌내는 길이다. 지금 당장은 만날 수 없는 길이지만, 언제나 함 께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철길이 철길인 것은 시간의 누적인 역사가 베어 있기 때문이다. 1899년 제물포에서 노량진을 오가는 경인선이 첫 경적을 올린 이후 철길은 격동의 근대사를 달려왔다.
( 3 ) 수탈하고 징병하고 피란하고 산업하러 가는 길에 철길이 있었다.[철길이 철길인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듯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간 다. 상경하고 귀경하고 입영하고 귀대하고 여행하는 곳에 늘 철길이 있었다. 그러니 [ 철길이 철길인 것은] 그 길에 자갈돌 처럼 깔려 있는 기다림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외로워 서 철길이 두 길이 된 것 인지도 모르겠다.
. ( 4 ) 그리고 [철길이 철길인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철길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그는 [ 이 살아있음이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 나는 믿고 / 또 사랑하는 것이 ] (<육교>)고, [ 음침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 기름 묻은 이슬이 검게, 선로위에서 반짝인다 / 아 직 젖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검은 눈동자 >)라며 희망을 놓지 않는것이다. 고통도 절망도 이별 도 끝이 있기 때문에 견딜 만한 것이고,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고, 결국 희망인 것이다. 그리하여 [철길은 희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 끈질기고 길고 / 거무튀튀한 ] 것이다. 당신이든, 미래든,휴 전선 너머든 완행이든 급행이든 KTX 든, 바로 그 곳 까지 달려가는 것이 철길인 것이다. [評] 정끝별 <시인>
2013.12.20.편집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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