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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

[Essay] 따뜻한 이별

by 하기* 2015. 4. 30.

 

 

 

 

[ESSAY] 따뜻한 離別(이별) 

                                       ㅡ정경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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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원장님. 저는 병원에서 안 죽어요.  그러니 정신을 잃더라도 큰 병원으로 보내지 마세요." 겨우 말을 내뱉고는

          이내 책상에 머리를 파묻는다. 하얗게 센 머리털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 뚝뚝 떨어진다.  잠시 후,  힘겹게 고개를 

          쳐들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숨이 차서 헐떡이면서도 간구(干求)하는 눈빛만은 강렬하다. 나는 할머니의 챠트

          에서 나이를 재차 확인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 눈을 본다.  선(善)하고 투명하다. '진심이구나.'  거칠고  물기

          없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가족들과 상의해서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할머니는 92세다.

          기관지 천식, 심부전, 만성위장병과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다. 가족으로는 슬하에 2남 2녀가 있는데,  6 25전쟁

          때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4남매를 키웠다.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반듯하고 야무지게 사셨다. 자식들에게는

          자상하면서도 엄격했는데, 그 가르침 덕분인지 자식들이 모두 효자다.큰아들만 1970년대 서독에 광부로 파견되

          어 그곳에 정착해 있을 뿐 나머지 자식들은 할머니 집 근처에있다.할머니가 연로해지자 자식들이 서로 모신다고

          했지만 자식들에게 폐 끼친다고 당신께선 지금까지 따로 살고 있다.  할머니 인품이라면 그럴 만했다. 내 병원에

          서 당신 차례가 되었는데도 급하거나 바쁜 환자가 있으면 먼저 진료받기를 권했다.  당신 진료 중에도 밖에 대기

          환자가 많아 소란스러우면 서둘러 나가시곤 했다.

          자식들이 찾아왔다.어머니 상태가 나빠져 식사도 못하고 정신이 흐려지곤 하는데 얼마 전에 다녀간 큰아들 얘기

          만 하신다고 했다. 할머니는 평소 가난 때문에 큰아들을 외국으로 보낸 게 평생 한(恨)이었는데, 죽기 전에 밥 한

          끼 해 먹이고 자는 모습이라도 한 번 봐야겠다고 하셨단다. 비행기 삯이 없어 못 올지 모르니 독일로 돈을 부치라

          고 채근하시곤 했다. 할머니 눈에는 독일에 자리잡고 잘사는 큰아들이 아직도 가난하게 느껴졌나 보다. 큰아들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왔다. 꿈에 어머니가 자주 나타나 귀국하려 했는데 마침 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큰아들과 함께 지내는 2주 동안 할머니는 초인(超人)적인 힘으로 죽음을 이겨냈다. 할머니가 자는 아들을 쳐다보

          며 볼에 뺨을 비볐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누구를 챙긴 건지 모르지만  다가오는 이별에 대한 완벽한 준비 시간이

          었으리라. 그 후  할머니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며칠을  동네 요양원에 계시다가 자식들의  눈물어린 이별 인사를

          받으며 생(生)을 마감했다.  인자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

          으리라 믿는다. 

          의학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숨이 멈추면 인공호흡기로 숨 쉬게 하고,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로 뛰게 한다.       

          소변이 안 나오면 투석하여 노폐물을 거르고,   음식을 먹지 못하면 혈관주사로 칼로리를 보충한다.  이렇게 해서

          연명(延命)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스러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연명 치료가 또 다른 부담이 되었다.

          그렇다고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이유로 의사가 환자를 거부하거나 방치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사의 숙명을 저

          버리는 일일뿐더러 현행법으로도 불법이다.보호자가 치료 중지를 결정하는 것도 악용의 소지가 있어서 원칙적으

          로는 용납이 안 된다. 그러면 연명 치료가 싫다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집에서 견뎌야 할까? 통증은 치료하되 심

          폐소생술·인공호흡기·인공투석은 안 할 수 없을까?

          현행법은 오로지 환자 본인의 의사(意思)만 존중된다. 의식이 명료할 때 뜻을 밝히면 되고,  이왕이면 문서로 하는

          게 좋다. '사전의료 의향서(意向書)'에 서명하면 된다.  이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어떤 치료는 받고 어떤 치료는 하

          지 말라는 자신의 뜻을 밝히는 서류다.

          최근 들어 연명 치료를 반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생명 연장은 의미가 없

          으며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만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중환자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고, 연명 환

          자에게 장착된 최신 기계와 최고의 의료진을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곳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서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그 시기나 방법을 미리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우리가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마냥 두려워만 하지 말고 천상병 시인의 詩

         '귀천(歸天)'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을 차분하게 받아들이며 준비하는 것도 인생을 새롭게 음

          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그 순간을 멋지게 보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정경헌 서울 정내과의원 원장

 

 

 

                                ㅡ[조선일보] A28면 오피니언 : 2015.04.29   캡쳐 ㅡ    2015.4.30 편집  하기  

 

 

 

 

 

 

Thank you

 

 

 

이별의탱고 20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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