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가다 만난 사람&풍경
[가을 억새 ]
- 정 일 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성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ㅡ한국의산천 blog에서 옮김 ㅡ
[ 갈 대 ]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 간에 그 지나간 것들을 오늘 여기까지로 오는 길이었으며,
여기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시간 또한 십년이나 이십년 뒤 짐작도 못하겠는 그 시간들로 가는 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제야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ㅡ신경숙의 산문집 [아른디운 그늘] 中에서
Thank you
2015.10.30.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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