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문 시간(時間)의 표정
서 지 월
차라리 비어 있음으로 하여
우리를 더 깊은 뿌리로 닿게 하고
더러는 말없음으로 하여 더욱 굳게
입다문 時間의 표정을
누가 새소리의 무늬마저 놓쳐 버린 길의
길 위로 날려 보내겠는가
오지 않는 날들은 뿌리로 젖건만
쓸쓸한 풀포기는 남아서
다가올 海溢(해일) 같을 때
들리지 않는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땅의 숨결,
아아 언제나 보이는 것의 그늘은
우리의 등 뒤에서 또 다른 그늘을
만들어 가는구나
ㅡ 매일신문 장옥관의 詩와 함께 ㅡ 中에서
시 평
잎 한 장 달지 않은 전봇대들처럼, 갈잎 다 져버린 낙엽송처럼
비죽이 선 숫자 ‘11’의 달도 지나갑니다. 산과 들을 푸르게,
무성하게 덮었던 녹음은 다 고스러지고 땅은 제 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조용히 ‘침묵’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기실 나무나 풀의 녹음은 땅이 내뱉는 말씀이 아니던가요.
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들을 보면 과연 입 없는 땅이 풀어내는 수다 같습니다.
한 철 풀어내던 수다도 다변도 그치고 고요히 침묵의 자리로 돌아가는 풀과 나무들.
사람으로 치자면 이순의 나이쯤이나 될까요. 귀밑머리 희끗희끗 말이 없어지는 나이.
‘오지 않는 날들은’ 끝내 오지 않고, ‘쓸쓸한 풀포기’만 남은 ‘입다문 時間의 표정’.
탄식의 어조에 묻어 있는 삶의 허무감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첫 연에서 내려올수록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침묵의 진행.
장옥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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