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1.11.17 00:25 / 수정 2011.11.17 00:27
감나무 Diospyros kaki
11월의 숲
- 심재휘 (1963~ )
가을이 깊어지자 해는 남쪽 길로 돌아가고
북쪽 창문으로는 참나무 숲이 집과 가까워졌다
검은 새들이 집 근처에서 우는 풍경보다
약속으로 가득한 먼 후일이 오히려 불길하였다
날씨는 추워지지만 아직도 지겨운 꿈들을 매달고 있는
담장 밖의 오래된 감나무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
여러 참나무들의 군락을 가로질러 갈 때
옛사람 생각이 났다 나무들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자꾸 몸을 뒤지고는 하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길쭉하거나 둥근 낙엽들의 기억에 관한 것밖에는 없다
(……)
내가 걸어가는 11월의 숲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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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빨간 열매가 서서히 쪼그라든다. 가지 한 가득 매달린 감을 따낼 손이 모자라 까치밥으로 남았다.
겨울 식량이 넉넉해진 새들의 울음소리 흥겹지만, 깡마른 열매는 서럽다.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서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민 노을 빛이 서러움을 한 겹 덧씌운다. 사람 떠난 집 뒤란에 홀로 남은 감나무의 앙
상한 가지 위로 먹구름이 덮인다. 곁을 떠난 사람 그리워 나무 줄기까지 붉게 상기된다. 뒤란의 고요 속
에 옛 사람 옛 일이 수런수런 뒤척인다. 조롱조롱 맺힌 열매에 담긴 옛 추억이 소리 없이 떠오른다. 다시
걸어야 할 늦가을 숲은 하릴없이 아름답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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