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가을 숲 속에서
[중앙일보] 입력 2011.11.18 00:04 / 수정 2011.11.18 00:08
음나무 Kalopanax septemlobus
가을 숲 속에서
- 김일영(1970~)
나뭇잎들 떨어지는 무게가 아프다
흑백 초상화가 지켜보는
사진틀 밖에서도
어머니는 늘 해녀였다
검은 고무옷이
속살보다 부끄러웠다는
당신의 부은 손등 위에
어린 손을 얹으며
나무들은 나이테 속에
봄을 숨긴 채 겨울을 건너왔다
떨어진 날개 쪽으로 기운 몸 이끌며
방바닥 가로지르던 벌레의 행로를
기어코 당신은 묻지 않으셨다
바다마저 늙어 등 돌린 곳에서
마당의 잡초들 흔들리고
가을의 활엽수들 아름답지만
내가 서 있는 숲 속에
썩어 싹이 트는 나뭇잎의 이름을
소리 내 말하는 바람은 없다
사람의 행운을 지켜주는 나무가 있다. 음나무다. 어린 나뭇가지에 사나운 가시를 촘촘히 돋우는 나무다.
옛 사람들은 담을 넘는 삿된 귀신들의 도포나 치맛자락이 걸리도록 울타리에 심어 키웠다. 사람살이의
평안을 지켜준 고마운 나무다. 애시당초 초식동물의 공격을 막기 위해 돋아낸 가시로 나무는 사람의 마
음도 지켰다. 후덕으로 키운 그의 넓은 잎에는 온 생명을 지켜 온 노동이 담겼다. 음나무 잎사귀가 노동
의 수고를 덜어내고 아프게 낙엽한다. 자신의 남루를 감추며 자식을 올곧게 키운 가난한 어머니의 치마
폭 안에 쌓인 아픔을 닮았다. 스치는 바람조차 이야기하지 않는 늙은 어머니의 아픈 삶, 음나무의 낙엽
이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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