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밤 노래 4
[중앙일보] 입력 2011.10.25 00:23 / 수정 2011.10.25 00:32
갈대 품종 Cortaderia selloana
밤 노래 4
- 마종기(1939~)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바람 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
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
쓰러졌다가도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갈대들뿐이랴.
멀리 있으면 당신은 희고 푸르게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슬프게 보인다.
산에서 더 높은 산으로 오르는 몇 개의 구름.
밤에는 단순한 물기가 되어 베개를 적시는 구름.
떠돌던 것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가 되어 내리고
내가 살던 먼 갈대밭에서 비를 맞는 당신.
한밤의 어두움도 내 어리석음 가려주지 않는다.
................................................
꽃 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다가서면 갈색 꽃 이삭 부대끼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가슴 깊이 들어온다.
바람을 이끌고 일제히 고개 숙였다가, 바람 떠나기 전에 일어난다. 흔들리고 지친 생명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곧추선다. 한데 모여 서로를 포근하게 덮어주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갈대의 뜨거운 몸부림
이 애틋하다. 어느 생명에게나 모여 사는 게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갈대 꽃 스치는 가을 바람에
섞여 든 생명의 수런거림이 가을교향곡으로 살아 오른다. 침묵하는 생의 장엄한 아우성이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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