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중앙일보] 입력 2011.12.15 00:58 / 수정 2011.12.15 00:58
버드나무 Salix alba 품종
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 최하림(1939~ )
하늘 가득 내리는 햇빛을 어루만지며
우리가 사랑하였던 시간들이 이상한 낙차를
보이면서 갈색으로 물들어간다 금강물도 점점
엷어지고 점점 투명해져간다 여름새들이
가고 겨울새들이 온다 이제는 돌 틈으로
잦아들어가는 물이여 가을물이여
강이 마르고 마르고 나면 들녘에는
서릿발이 돋아 오르고 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빛난다 우리는 턱을 쓰다듬으며
비좁아져가는 세상 문을 밀고 들어간다
겨울과 우리 사이에는 적절한지 모르는
거리가 언제나 그만쯤 있고 그 거리에서는
그림자도 없이 시간들이 소리를 내며
물과 같은 하늘로 저렇듯
눈부시게 흘러간다
...........................................................................................
지난 봄, 가지마다 버들강아지가 은빛으로 빛나던 버드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졌다. 앙상하게 드러난 나뭇가지
위로 스며든 겨울 햇살이 다시 은빛으로 빛난다. 봄의 은빛은 포근하고, 겨울의 은빛은 삽상하다. 은빛 햇살
어루만지며 파란 하늘에 닿은 굵고 가는 나뭇가지들이 모두 투명해졌다. 가지가 배배 꼬여 용버들이라고도 부
르는 나무의 흐트러진 가지 위에도 은빛 햇살이 반짝인다. 지었다가 흩어지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던 버드나무
그림자가 얼어붙었다. 나무 줄기를 스쳐간 수천의 시간들이 눈부시게 흩어지고 겨울이 깊어간다. 나뭇가지 아
래로 우리가 사랑하였던 시간들이 물처럼 반짝이며 흘러간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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