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억새꽃 다발은
사랑하는 이에게는
보내지 마세요
다만 그대를
가을들녁에 두고 떠난 이의
뒷모습에 보내세요
마디마디 피가 맺힌
하얀 억새꽃
불같은 미움도 삭혔습니다
잠 못 드는 그리움도 삭혔습니다
솟구치는 눈물도 삭혔습니다
삭히고 삭혀서
하얗게 바래어 피었습니다
떠난이의 그 호젓한 뒷모습에
아직도 가을이 남아 있거든
억새꽃 다발을 보내셔요
한 아름 가득 보내세요
ㅡ김순이 시인이 쓴 "억새의 노래" 전문
[ 갈대 ]
ㅡ김윤현
생각이 깊으면 군살도 없어지는 걸까
삶을 속으로 다지면 꽃도 수수해지는 걸까
줄기와 잎이 저렇게 같은 빛깔이라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묵상이 필요할까
물 밖으로 내민 몸 다시 몸속으로 드리워
제 마음속에 흐르는 물욕도 다 비추는
겸손한 몸짓이 꽃의 향기까지 지우네
ㅡ 갈대는 고뇌하는 만큼 겸허한 모습을 지닌 식물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의 줄기와 잎, 꽃과 줄기의 수수한 빛깔, 그것은 무채색 옷을 입은
수행자가 아닐 것인가.마음을 모으기위해 합장을 하고,물빛 거울에 자신
을 비춰보는 묵상의 행위. 이는 곧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소실점.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겠으나, 갈대 꽃에 향기가 없다는
사실을 시로 녹여낸 사람은 흔하지 않다. ㅡ(시인 장옥관)
[ 갈 대 ]
- 신경림 (1936 ~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
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ㅡ삶이 일정 정도 눈물이라는 것에 공감할 때,수직적 위계가 사라지고
수평적 코뮌<commune>이 만들어진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갈대들도
속으로 울고 있다는 것을 알 때,슬픔의 연대(連帶)가 생긴다. 갈대들이
늘 모여, 함께 사는 이유다.약한 것들이 함께 모여 서걱거릴 때,슬픔은
사랑으로 진화한다. 너도 울고 있구나. 나도 울고 있다.
<오민석 시인.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2016.10.24.월요일 中央日報 오피니언[시가 있는 아침]에 게재된 내용
[ 가을 억새 ]
-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이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 11월 ... ]
ㅡ 오세영 시인ㅡ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 같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 뿐이다.
상강(霜降)
서리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끼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억새밭 사이에 앙증맞게 열매맺은 요녀석의 자태는 내,긴장감을 풀어주었다.
2016.11.10. 대구수목원 습지원에서 ...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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