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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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
ㅡ 김지하
이제
어디라도
고즈넉한 곳에 가 옛 연인의 지금 주름살
깃들어라 하나 둘
셋 넷
비 맞은 새모냥 빗방울 헤아리는 소리 듣고 살으리
털고 털면서
서 있으리 나
이제 아무것도 아니고
남녁으로부터 불어오는 즐거워 사는 것도 아니매
바람 한 오리 선뜻
내게 와 꼭
이렇게 말하리
" 삶은 그냥 오지 않고
허전함으로부터만 온다 " 고.
<시집 "은둔과 유목". 창비>
☎ ㅡ세월은 삶보다 빨리 지나간다.이제 시인은 "고즈넉한 곳에 가"
"빗방울 털면서" 쉬고자 한다. 비 맞은 유목의 세월을 지나"은둔"의 시간에
당도한 것이다.유랑의 날개를 접고 조용히 지나간 세월을 다시 느끼는 시간,
마모된 그 시간들은 "옛 연인의 지금 주름살" 헤이는 소리를 듣게 한다.
연인은 "옛" 연인이며, 주름살은 "지금"주름살이다. 한때 열정적으로
들떴던 연인의 "지금 주름" 헤이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란 - - -.
<중략>
물론 시간은 어떤 생도 낡게 만들고 삶은 그냥 오지 않는다.
그것이 유목의 세월을 보낸 이에게 가해지는 시간의 가혹한 대가이다.
어떤 회한과 공허를 통과한 뒤에, 삶은 그제서야 "온다".하지만 그 공허가
오히려 생을 생으로서 느끼게 만드는 것. 그 "허전함" 으로부터 이제 다른
생이 열릴지도 모른다. 저 깊은 "허전함" 을 통해 비로소 생은 다시 시작된다.
2005년 1월 8일 토요일 [조선일보] 오피니언 게재
ㅡ 이광호의 詩를 따라 나선 산책ㅡ 中에서
<문학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2018.7.24.편집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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