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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우리나라

천년고도 경주 나들이 ( 2 ) 佛國寺

by 하기 2 2021. 11. 29.

 

 

              천년고도 경주 나들이 ( 2 )

 

 

              경주 불국사 (慶州 佛國寺)

 

 

     

 

 

              언    제 :  2021.11.20. 08:25 ~ 20:20

              어디로 :  경주 석굴암 석굴 ㅡ 불국사 ㅡ운곡 사원 ㅡ 옥산서원 ㅡ

                            양동마을 ㅡ 첨성대/내물왕릉 <야경> ㅡ 동궁과 월지(안압지)<야경>

              누    가 :  하기와 사우 ( 寫友 ) 2.

              어떻게 :  오늘 우리의 출사 계획은 천천히 경주 불국사 한 곳만의 가을 풍경만 사진에 담아 오는

                           것이었다. 함께한 일행은 이른 아침 무궁화 기차를 타고 동대구 역을 출발 경주 역을 거쳐

                           불국사 역에서 내렸다. 오늘 출사 계획이 타고 가는 개인택시 속에서 변동이 되고 말았다.

                           오늘 경주 불국사 추경만을 담겠다는 계획은 우연찮게도 커져서 천년고도 경주의 석굴암

                           석굴을 먼저 찾아보았고 그다음 불국사로 자리를 옮겨 경내를 돌아보며 즐기면서 사진을

                           담으며 나왔다. 이어서 경주의 이름 있는 유적지 다섯 곳을 돌아 나오며, 안압지 야경까지

                           사진에 담는 출사 일정을 끝내고는 늦은 밤 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가차를 탔고, 대구에 왔다.

 

 

 

 

 

 

          [ 경주 불국사 (慶州 佛國寺) ] - 사적 제502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15-1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10년(751)에 재상 김대성(金大城)이 발원하여 개창되고 혜공왕(惠恭王)

         10년(774)에 완성 되었다. 조선 선조(宣祖) 26년(1593) 임진왜란 때 의병의 주둔지로 이용된 탓에

         일본군에 의해 목조 건물이 모두 불타 버렸다.그 후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웠고 1969~1973년 처음

         건립 당시의 건물터를 발굴조사하고 대대적으로 복원하 여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서 길이 90여 m 되는 석축과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위에 자하문(紫霞門)/ 대웅전/ 무설전이

         남북으로 놓였고 석가탑(釋迦塔) 다보탑(多寶塔) 이 서 있다. 그 서쪽에 연화교 (蓮花橋) 칠보교(七寶橋)

         안양 문과 여래 좌상 금동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있다. 무설전 뒤편에는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을 모신

         비로전과 관음전이 있다. 불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 찬미하던 수도자 들이

         불도를 닦던 곳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량이 어우러진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로, 1995년에

         석굴암 (石窟庵)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되었다.

 

 

 

 

 

           범영루/좌경루

           현재의 범영루는 옛 모습대로 중건된 아담한 누각이다. 범영루의 동편에는 좌경루가

           있었으나 조선말에 완전히 없어졌던 것을 복원공사 때 재건하였다. 경루는 경전을

           보관한 곳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경주 불국사 지하문으로 오르는 백운교. 역사다리꼴의 돌을 무지개(홍예) 모양으로 쌓고

     그 위에 반달 모양의 돌을 두른 뒤 사다리꼴의 홍예 종석을 끼워 맞춰 하강은 물론 상승 압력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한 불국사 내진 설계의 백미다. 세계유일의 쌍홍예교로 알려져 있다.

 

     지진을 간파한 신라인의 건축 백미 입니다.

     역사다리꼴의 돌로 둥굴게 쌓는 홍예교. 곡선이 우아하지만 밀어올리는 힘엔 맥을 못춥니다.

     그래서 홍예석 위로 둥굴게 한 겹 더 감았습니다. 그 가운데 사다리꼴로 끼워 맞춘 홍예 종석 하나,

     땅이 솟아도 끄떡없는 내진설계의 진수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연석을 톱니처럼 맞물려 쌓은

     그랭이 공법,축대마다 돌 홈을 파 가구처럼 짜맞춘 결구 공법. 751년, 김대성은 이토록 야무지게 지었습니다.

                    ㅡ매일신문 2021.11.16. 김태형 시시각각(時視角覺) 내진설계의 백미 불국사 백운교 中에서 옮김

                                                                              글, 김태형 매일신문 선임기자.  사진, 하기 송정학     

  

      청운교/백운교 (靑雲橋 白雲橋)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지하 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범영루/좌경루

    현재의 범영루는 예 모습대로 중건된 아담한 누각이다. 범영루의 동편에는 좌경루가

    있었으나 조선말에 완전히 없어졌던 것을 복원공사 때 재건하였다. 경루는 경전을

    보관한 곳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현재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천왕문 ( 불국사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문 )

 

 

 

 

             천왕문 안에  좌, 우에 버티고 선 수호신

 

 

 

 

             대웅전과 다보탑/석가탑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관람인

 

 

 

 

         ☎ 김대성 이야기

             김대성은 신라 중렵의 재상으로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만든 사람이다. 김대성과 관련된 신기한

             설화는 삼국유사에서 엿볼 수 있다. 김대성은 가난 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매일같이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할 정도였지만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작은 밭을 시주하고자 어머니를 설득하였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김대성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김문량의 집에서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 손에는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금 간 자가 쥐어져 있었다.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이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웅전( 大雄殿 )

           대웅전은 석가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으로 창건 시 기단과 석등 등의 석조물이 보존

           되어 있으며 중찬 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석가탑 (釋迦塔)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의 머리장식을 본

          따서 복원하였다. 특히 석가탑은 민간설화로 전해 내려온 석공 아사달과 그 연인 이사녀의

          안타가운 이야기와 함께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無影塔)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다보탑 (多寶塔)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다보탑은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고, 각 부분의 길이, 너비, 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키는 등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련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곱게 물들어 있는 불국사내 추경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이렇게 불국사 경내를 걸으며 추경을 담아나왔다.

 

      ☎ 설명 글, 참고문헌 ( 경주시 발행 안내 팸플릿 )에서 옮김

      

2021.11.20. 촬영 :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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