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 오세영(1942~)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이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중앙일보> 2008.6.18일자
인간은 완성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얻은 것을 통해 완성된다. 그릇은
완성체.그러나 그릇 역시 불을 이겨 그릇이 되는 법. 언젠가 우리의 내면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와 그 어떤 빛도 필요치 않듯이 지금 내면을 바라보라. 그 안에서 중심을
발견할 것이다.그 중심이야말로 빛이게 만드는 생의 순간들을 영원하게 만든다.그러
나 깨진 그릇은 칼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가 날카로운 끝을 세운다.
그것은 눈 먼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 지금 나는 칼에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맨발.
찔린 "상처 깊숙이서 성숙"한 혼을 기다리는 맹목(盲目). 그리하여, 이 피과학적이고
도 극렬한 사랑의 아포리즘은 순환(循環)과 원융(圓隆)의 중심을 화살처럼 관통한다.
<박주택 시인>
[출처] 황종배 시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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