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행복한 길
성큼성큼 걷는다. 신발을 슬슬 끌며 걷는다. 터벅터벅 걷는다. 걷는 데 ‘바른 자세’가 어디 있을쏘냐.까치 처럼 총총 걸어본다. 씨암탉같이 아기작아기작 걸어본다. 뒷걸음질로 가재걸음 걷는다. 엉덩이 실룩샐룩 아진걸음 걷는다. 비실비실 배착걸음도 걸어본다. 오호, 오호, 어느 걸음짓이든 다 좋구나. 만들어진 길은 ‘굳은 길, 헌 길’일 뿐이다. 새가 어디 공중에 길을 낸 적 있는가. 새는 늘 허공에 새 빗금 그으며 날아간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진다. 서로 티격태격 부딪친다. 엄마와 딸이라고 예외가 없다.서로 뽀로통한 얼굴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간다.부부도 비슷하다.거의 반쯤은 줄기차게 싸운다. 친구끼리도 우정은커녕 되레 서 먹 서먹해진다. ‘따로 또 같이’ 걸으면 그만이다. 나그네들끼리 울력걸음 하면 된다. 서로 보일 정도로‘ 저만치 혼자 ’ 가는 게 그것이다. 다인가. ‘내면의 소리니 뭐니’ 웬 눈물바람 호들갑인가. 기를 쓰고 도장 받아가며 ‘전 구간 완보’에 목맬 것 도 없다. 그 쇠심줄 같은 집착이라니. 길 위에선 그저 놀면 된다. 노는 자가 으뜸이다. 뒷짐 지고 걸어본다. 달팽이처럼 걸어본다. 지렁이처럼 엉금엉금 기듯이 걷는다. 노루처럼 겅중겅중 걷는 다. ‘빠릿빠릿’ 진둥걸음 걷는다. 앙감질로 깽깽이걸음 걷는다. 햐아! 정말 좋다. 그 어떤 걸음새도 다 좋다. 아, 갑오년 청마의 새해 첫날 1월1일. 어딜 걸어도 참 좋다!
일부러 숲길 고갯길 강길 들길 옛길을 에둘러 아주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그대에게 갑니다
잠시라도 산정의 바벨탑 같은 욕망을 내려놓고 백두대간종주니 지리산종주의 헉헉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이는 길 잠시 버리고 어머니 시집 올 때 울며 넘던 시오리 고갯길 장보러 간 아버지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숲길 …그 잊혀진 길들을 걷고 걸어 그대에게 갑니다
―이원규 [‘지리산 둘레길’] 에서
달서구 도곡동 월광 수변공원 호수주변의 수로를 연결해 주는 구름다리 [2013.12. 30. 15 :00 촬영]
갑오년 靑馬의 해, 새해 첫날. 1월1일. 어딜 걸어도 참 좋다! 나는 오늘 이곳을 걸으며 오 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들 어금니 꽈악 물고 웃음을 머금고 걷는다. 힘찬 기운이 좋다. 2014.1.1. 아침에 편집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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