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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Europe여행/이탈리아

이탈리아 여행 (19 ) 로마 안의 작은 나라,바티칸 ( 1 )

by 하기 2 2022. 7. 16.

 

 

 

                       이탈리아 여행 (19 ) 이탈리아 로마 안의 작은 나라, 바티칸 ( 1 )

 

 

 

                  언    제 :  2012.5.4. (금요일) 오전

                  어디로이탈리아 로마 안의 작은 나라, 바티칸

                  어떻게이탈리아 로마 안의 작은 나라. 바티칸. 국가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조그만하지만

                                 로마에 들른 사람은 빠짐없이 바티칸을 돌아본다.교황의 거처인 이곳에는 르네상수의 정수가

                                 고스란히 안치돼있다.미술과고교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명화나 조각품들과

                                 대면하는 순간, 모든게 경의스럽고 입을벌리게 하였다. 로마 교황이 통치하는 최소의 독립국

                                 바티칸의 모든것을 열심히 돌라 보았다 .

 

 

 

세계최소국 바티칸 시티 (Vatican City)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시내에 위치해있으며, 벽으로 둘러싸인 영토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독립 도시 국가이다. 바티칸 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0.44㎢ 의 면적에 약 1000명 정도의 인구를 지녔으며 면적과 인구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 국가이다.
 바티칸시국은 1929년 라테란 조약에 의해 새롭게 세워진 나라이다.이전에는 로마를 중심 

으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으로 존속하였으나, 대부분의

영토는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 바티칸시국은 로마의주교, 즉 교황이

통치하는 신권 국가로 로마 가톨릭의 상징이자 중심이다.교황의 신변보호는 1506년 부터

전통에 따라 100여명의 스위스 근위병이 미켈란젤로의 다자인 복장을 하고 봉사하고 있다.

 

 

 

 



 

2005년4월19일에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현재( 2012.5.)까지 활동중인 [베네딕토]16세.교황

 

 

 

바티칸궁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벽아래 인도에서 줄을 서서 평균2시간

이상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때는 1시간여를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전 세계 명작이 모여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 바티칸 궁 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전 세계 명작이 모여 있는 세계 최고의 바티칸 박물관( Museo Gallere Vaticano ) ]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에 가장 큰 박물관으로 르네 상스

작품을 비롯하여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걸작들이 모여있어 서양미술품의 보고이다.

 

 

 

바티칸의 어원은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이주해 왔던 에투루스크 인들이 현재의 이 바티칸

지역을 바티쿠스 언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예언자 란 의미의 바티(Vati)에서 유래 되였다고 한다.

  ㅡ 불로그 [아내와 함께 떠난 사진여행. Photographer Park Junyoung] 글. 제공ㅡ

 

 

 

바티칸 궁은 거대한 성벽으로 싸여 있어 마치 요새와도 같은 곳이다.바티칸궁은 교황이

살기는하지만 1,400 여개의 방들과 예배당중 사용하는 곳은 몇 안된다고 한다. 대부분이

박물관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 싸인 바티칸 박물관 안에 정원.이곳에서 박물관 관람을 위해 설명을 듣는 곳이다.

 

 

 

로마 귀족 사람들이 죽으면 사용했던 석관(石棺)

 

 

 

[티그리스강]
로마 하드리마 시대의 조각을 모방한 것으로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머리와 오른쪽

왼손 등 여러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젤로의 감독아래 모두 추가로 조각되었다고 한다.

 

 

 

네로 황제가 사용한 [네로의 욕조]인데 붉은 대라석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박물관내에는 너무 방대하고 엄청난 볼거리로 가득 했는데 보이는 게 모두 유물이고

무엇이 얼마나 소중 한건지 자세히 관람하지를 못하고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만 눌렀다.

 

 

 

교황이 거주했던 궁전답게 천정과 벽면등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있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교황과 사제들인 추기경들과의 마찰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천지창조" 와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모두가 나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교황이 천으로 몸을 가리자고 하자 "교황님은 사람의 영혼이나 걱정하시고 몸뚱이는

제게 맡기시죠 " 라고 대답했다 고 한다.옆에서 이를 듣고있던 "체시나"라는 추기경이 " 이따위

그림은 신성한 교황의 예배처소가 아니라 공중 목욕탕이나 술집 벽면에나 어울린다 "고 하자

켈란젤로는 체시나 추기경을 그림 속에서 지옥의 수문장으로 그려넣고 뱀이 그의 등을 감고

기를 무는 모욕적 그림으로 복수를 하였다고 한다.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그의 제자에

해 나체의 아랫도리 부분은 천으로 약간씩 가리는 덧칠이 시작되었고 그 수정 작업은 18세기

지 진행 되었다고 한다.지금 우리가 보는 "최후의심판" 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처음 만들어지는 "천지창조' 와 인간의 모든 가식을 버리고 심판대에 서는

"최후에 심판"에왜 옷이 필요해야 했는지 미켈란젤로는 그것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ㅡ블로그 [아내와함께한 여행 Photographer Park Junyoung] 글. 제공ㅡ




 



 

 

[ 시스티나 예배당 (cappella sistina ) ]
바티칸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과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곳이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이라고 한다

교황이 예배 드리는 곳이며 [콘클라베]라는 선거도 여기서 치뤄진다고 한다.특히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는 " 천지창조". 정면제단 뒷편 벽화는 "최후의심판" 으로 두개 다 미켈란젤로의 대작물로 천지

창조는 그의 나이 33세때인 1508년에 시작하여 4년뒤에 완성 하였고 최후의심판은 그 보다 한참

뒤인 61세 였던 1536년에 시작하여 6년만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사진촬영이 금지된터라

마음대로 카메라 셔터를 누리지 못 했는데...그 보다도 덤벙거리다 "천지창조"  와 "최후의심판"

그림 자체를 생각 못하고 지나쳤으니 지금 생각하면 다시 갈 수 도없고..... 어느 종교도 갖고 있지

않는 나는 흥미도 반감되었던 예배당 안에서의 무례였다고 생각을 한다. 6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의 성당 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쿠폴라"라고 하는 베드로 성당의 돔 외부(상단 사진)와 돔

내부(아래 사진)이다미켈란젤로는 베드로의 영혼을 하늘로 오르기위해 136m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지었다고 한다. 이 돔 바로 아래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1950년 성당 안 제단 아래서 베드로의 유해가 발굴되었고 그해 12월23일

교황 [비오] 12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를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바티칸 정문을 지키고 있는 그 유명한 스위스 용병]
바티칸과 교황을 지키는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호위병은 모두가 건강하고 전투력이

뛰어난 용맹스러운 스위스 출신의용병이다.큰 칼 옆에차고 활동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 보았다.

 

 

 

그런데 정문 앞에서 바티칸궁 안으로 출입하려는 자동차는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한 마티즈(Matiz)소형 승용차였다.그 안에는 이탈리아인 두명이 타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으쓱했는지 모른다.그게 나라 사랑 아닐까? 모두들 자기들이

관심 있는 곳으로 가서 짧은 자유시간을 보냈는데 바티칸 정문에 용병을 찿아나섰

나는 장소를 매우 잘 선택 하였던것 같다 .

 

 

 

 

[소금인형]

                     ㅡ 류시화(1958 ~ )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 간 소금 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 든 나는소금 인형처럼

흔적도 없이녹아 버렸네.


 

함께 용병들의 근무 모습을 보고 있던 나이든 이 어르신 내외는 스위스에서 왔다고 했다.

자기나라 젊은이들이 이곳 바티칸을 지키고 있는게 자랑스러웠는지 으쓱해 하며 즐겁게

함께 사진을 만들었다. 분명히 대한민국을 이 두분은 알고 있었다. [꼬레아]원더풀 하며...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잘 알려진 [산피에트로 대성당 ]
성당 정면의 모습이다. 성당의 규모를 말해 주듯 정면은 높이 27m의 8개 기둥으로 이루워져 있고

그 위 지붕에는 13개의 동상이 있는데 가운데가 예수와 세례요한 그리고 그 양 옆에 11명의 제자들

모습이들.  밑에 사람들을 보면 기둥과 성당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산피에트로 성당은 초대 교황이자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언덕에 초라한

모습이 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본 교황 [니콜라우스]5세에 의해 지금의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해 1626년 수 차례의 증 개축을 통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라틴 십자가 모양의 성당은 길이가 211.5m에 높이는 45m 에 달한다.어마어마한 공간속의

성당안은 완벽한 조화와 웅장한 규모의 종합예술 품으로 정교함과 화려함의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건물 우측 상단 맨위 2번째 열려있는 창문이 교황청 방 이라고 한다.때때로 교황이

문을 열고 띠엄띠엄 연설을하며 손 흔들어 여러사람 에 모습을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의 장엄한 모습 전경.

 

 

 

성당의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은 자의와 타의에 의해 참여하였으며처음에는

건축가 [브레만테]의 주도로 시작 되었으며 [라파엘로]를 거쳐[미캘 란젤로]에 의해 완성 되었다.

 

 

 

 

                                            성베드로(산피에트로) 대성당 앞 광장에 우뚝 솟아있는 탑

 

 

 

2012. 05. 28. 1차 편집하였던 것을

2022. 07. 15. 재 편집하였음 :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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