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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詩 들385

두 개의 꽃나무 두 개의 꽃나무 이 성 복 당신의 정원에 두 개의 꽃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잎이 예뻤고 다른 하나는 가지가 탐스러웠습니다 당신은 두 개의 꽃나무 앞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보고 그 중 하나는 가져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두 개의 꽃나무 다 갖고 싶었습니다 하나는 뜰에 심고 다.. 2008. 12. 31.
나뭇가지 나뭇가지 곽해룡 새가 날아가자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새가 앉아서 울 때는 꿈적도 않더니 새가 떠나자 혼자서 오랫동안 흔들린다 시평 종일 겨울비 내렸던 엊그저께, 내 일터의 튤립나무 가지에 찌르레기 한 마리가 앉아 요란스레 울어댔다. 뼛속까지 시린 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잿빛 .. 2008. 12. 25.
강구 항 / 송수권 강구 항 송수권 상한 발목에 고통이 비듬처럼 쌓인다 키토산으로 저무는 십이월 강구항을 까부수며 너를 불러 한잔 하고 싶었다 댓가지처럼 치렁한 열 개의 발가락 모조리 잘라 놓고 딱, 딱, 집집마다 망치 속에 떠오른 불빛 게장국에 코를 박으면 강구항에 눈이 설친다 게발을 때릴수록 밤은 깊고 막.. 2008. 12. 18.
[장옥관의 시와함께] 아내들 -육봉수 아내 들 ㅡ 육봉수 ㅡ 직각으로 완강하던 어깨 반쯤 무너진 채 상경 투쟁 마치고 돌아와 열없이 두살배기 아들 어르고 있는 그이의 무릎 앞 관리비 고지서 모르는 척 들이민 날 밤엔 등 돌리고 누워 잠들기 십상입니다 일 년하고도 석 달을 넘긴 날들 눈앞의 돈 몇 푼보다는 노동자로서의 내 자존심 먼.. 2008. 12. 10.
오늘의날씨 전국 꽁꽁. 돌을 던지면 “쩡∼쩡∼” 놋 주발 소리 내는 얼음판. 손에 쩍쩍 달라붙는 문고리. 술꾼 머리맡, 땡땡 얼어붙은 자리끼. 오대산 상원사 대웅전 처마, 삐죽삐죽 드리운 죽창 고드름. 지리산 함양벽송사, 칼바람 맞으며 서있는 우뚝우뚝 천년소나무. 덕유산 향적봉, 눈덩이 훌훌 .. 2008. 12. 5.
겨울비와 함께 겨울비와 함께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 나무에 간신히 붙어 있던 잎들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하늘을 가득 메웠던 짙푸른 여름날의 흔적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 시인의 눈엔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간구하는 성자(聖者)다. “…내 안에 나를 다 덜어내고서야 얻을 수 있는 저 무.. 2008. 12. 3.
너를 그리고 싶다 ㅡ박주영 ㅡ 너를 그리고싶다 박 주 영 그가 가고 처음 생리가 찾아와 자리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소용돌이처럼 사정없이 쏟아내는 범람. 석고처럼 웅크리고 앉아 달아난 시간들을 꿰면서 당신 속으로 자꾸 파고드는 새벽 두 시. 여전히 내 심장 속에서 불타고 있었고 내 온 몸에서 꽃 피워내고 있었.. 2008. 12. 2.
입다문 時間의 표정 / 서지월 입다문 시간(時間)의 표정 서 지 월 차라리 비어 있음으로 하여 우리를 더 깊은 뿌리로 닿게 하고 더러는 말없음으로 하여 더욱 굳게 입다문 時間의 표정을 누가 새소리의 무늬마저 놓쳐 버린 길의 길 위로 날려 보내겠는가 오지 않는 날들은 뿌리로 젖건만 쓸쓸한 풀포기는 남아서 다가.. 2008. 11. 27.
꼬막 한접시 행복 한 사발 전남 벌교 강진 뻘밭에 참꼬막 한창. 쫄깃쫄깃 차지고 알싸한 맛. 간간하고 배릿한 향기. 한입 깨물면 짭쪼름한 개펄 냄새. 음력 그믐 언저리에 잡히는 것이 살 통통 으뜸. 팔팔 끓인 물을 식힌 뒤 중불에 삶으면서 한 방향으로만 저어줘야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삶은 꼬막, 꼬막전, 꼬막회무침, 양념꼬.. 2008. 11. 25.
가을 일기 가을 일기 ㅡ 이 구 락 ㅡ 햇살은 낮은 목소리로, 바람은 따뜻한 걸음으로 하오의 언덕 넘어 왔다. 먼 데 사람 생각나는 초가을, 잘 익어가는 잡목숲 속 조그만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키큰상수리 나무사이 생각에 잠긴 새털구름 바라보고 파이프를 두번이나 청소하고 앉은채 바지단추 열고 오줌도 .. 2008. 11. 19.
가을 지금 떠나려는가 늦가을 짧은 비손님, 그냥 가지 않고 어김없이 찬바람을 데려옵니다. 바람과 함께 찾아온 요즘 하늘은 한 점 잡티도 없는, 푸르고 맑은 최고 미인이죠. 고개 들어 넋이 빠져라 쳐다볼라치면 쌩 하는 찬기가 죽비처럼 사납게 얼굴을 때립니다.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단풍.. 2008. 11. 17.
해 후 해 후 ㅡ 신필영 ㅡ 북한산이 어떠냐는 고향친구 불러와서 모닥불 가을이 남은 우이령 길 함께 갔다 엇갈려 타관인 날들 구김살을 펴가면서. 두다 만 바둑판 헛집도 같은 쓸쓸함을 잔술로나 씻어보는 객기는 아직 맞수, 우리는 해묵은 가양주 그 빛으로 익고 있었다. 시조 評 ‘人間(인간).. 2008. 11. 8.
장옥관의 시와 함께 ㅡ 행복 ㅡ 김종삼 행 복 ㅡ 김종삼 ㅡ 오늘은 용돈이 든든하다 낡은 신발이나마 닦아 신자 헌 옷이나마 다려 입자 털어 입자 산책을 하자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보자 안양행도 타 보자 나는 행복하다 혼자가 더 행복하다 이 세상이 고맙다 예쁘다 긴 능선 너머 중첩된 저 산더미 산더미 너머 끝없이 펼쳐지는 멘델스존의 .. 2008. 10. 30.
기 억 기 억 김규성 벌초하러 가는 길 문득 어릴 적 홧김에 길가의 돌멩이 하나, 주인도 모르는 밭에 무심코 차 넣은 생각이 났다 나는 부리나케 차를 멈추고 흉가처럼 버려진 자갈밭의 무겁고 날카로운 돌 두 개, 양손에 들고 길로 나왔다 하늘은 푸르고 들판은 조용했다 ㅡ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함께] ㅡ .. 2008. 9. 17.
아버지 마음 아버지의 마음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분의 글입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 2008. 9. 15.
[스크랩] 어머니, 우리들 다 모였어요/전상열 어머니, 우리들 다 모였어요 -참회의 글- 큰아들 전상열 어머니, 우리들 다 모였어요. 기운 좀 차리고 우리를 굽어보세요. 어머니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아들딸과 며느리와 사위, 손자와 손녀… 저들의 해바라기처럼 동그란 얼굴들이 보이시나요. 우리들 얼굴이 누굴 닮아 동그란지 아세요. 물론 어머.. 2008. 9. 12.
[스크랩] 구월이오면 (안도현) 구월이오면 안도현 구월이 오면 구월에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듯 한번더 몸을 뒤적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옭기는것을 그때 강뚝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는 미는 손수레가 .. 2008. 9. 6.
[스크랩] 9월에 관한 시 9월에 관한 시 가을 편지 ㅡ나호열 구월의 시 ㅡ 함 형수 구월 ㅡ 이외수. 헷세 구월의 이틀 ㅡ 류 시화 9월이 오면 ㅡ 안도현 가을편지2 9월 바닷가에 퍼 놓은 나의 이름이 파도에 쓸려 지워지는 동안 9월 아무도 모르게 산에서도 낙엽이 진다 잊혀진 얼굴 잊혀진 얼굴 한아름 터지게 가슴에 안고 9월 밀.. 2008. 9. 6.